0. 들어가며
대-추천한다.
이름 그대로의 책.
손에 꼽히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었다.
이번 책은 게임 기획자라면 응당 가져야 하는 넓고 깊은 시야, 특히 디렉터로서 기획을 할 때의 Do와 Don’t를 가르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 기획 책을 읽어오며 리뷰를 써왔다. 어떤 것은 커리어 지도책이 되고, 어떤 것은 그 설명서가 되고, 어떤 것은 취중진담이 되기도 한다. 이번 책은 정말 정석 그대로, ”심화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개괄적이지도 않고, 장르나 분야에 따라 세분화되지 않아 기획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
솔직히 반 년에 한번씩은 읽으면서 내용을 되새겨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1. 심화이론서?
재미이론을 예시로 들어보자.
거의 게임 기획의 바이블 격으로 불려온 <재미 이론>과 비교해봤을 때도 이 책은 그 깊이가 엄청나다.
개인적으로 재미 이론은 이젠 뒤쳐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재미 이론은 책 내내 "게임은 패턴을 학습시키는 모든 과정을 통칭하는 것"이라는 관념과 더불어 “게임은 나쁜 것이 아니다!“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으로 그 몫을 다 했다. 정말 다른 내용은 다양한 예시를 들어 근거를 타당히 한 것에 가깝다.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과 함께 자라온 지금 세대에겐 그 내용이 깊은 감명을 안길 정도로 엄청난 내용이 아니게 되었다. 머릿속에 관념적으로만 존재했던 아이디어를 정확한 개념으로 정의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거기까지 오는 데엔 또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으리라 믿는다. 그에 대해서는 그동안 선배 격으로 길을 닦아온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하지만 결국 재미 이론은 더이상 최신식 게임에 그 내용을 접목시키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게임은 책이 발매된 이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이 책은 재미이론에서 제시한 패턴을 만드는 방법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설명하며 이론을 실제에 접목시키는 것으로 나아간다. 패턴을 어떻게 만들어야 계속해서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지, 어떤 패턴이 지루함을 유발하고 어떤 패턴이 포기할만큼 어려운지, 그 중도를 찾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 게임을 기획해야하는지,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법은 무언지를 알려준다. 확실히 재미이론에 비해서는 엄청난 심화과정을 제시한다.
내가 인디게임을 만들면서 했던 모든 고민들에 대해 그건 이렇게 해결하며 된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어쩔 때엔 그 고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할 정도. 내가 이걸 1년 전에 읽었다면 지금보다 H 프로젝트도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거다.
2. 자세한 내용은?
이 모든 내용은 전체 챕터의 맥락 안에서 읽어야 그 감동이 더하다. 때문에 이번엔 따로 구절마다 설명을 하지 않고 내용만 그대로 남겨두겠다. 반드시 모든 내용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칼삭...
피드백을 제안을 수집하기 위해 사용하지 말라. 플레이어의 경험을 수집하기 위해 사용하라.
(중략)
하지만 때로는 단순히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기 위해 신중하게 설계된 질문을 해야 한다. (중략) 테스터의 경험을 왜곡하거나 숨길 수 있는 개인적 상호작용이나 감정을 피하려고 노력하라. 긍정적이거나 "올바른" 대답을 장려하거나 보상하지 말라.
테스터가 제안을 하기 시작하면 그 제안을 만들어낸 경험을 추측하려고 노력하라.
'책상 점프'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플레이어가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하는 것을 말한다.
- 책상 점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효과가 있지만, 게임 메카닉이 정직하게 동작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려 플레이어의 몰입을 약화시킨다.
- 플레이어가 책상 점프를 하도록 내버려두면서 어떤 식으로든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책상 점프를 무시할 수 있다. 이는 책상 점프가 매력적이지 않게 만든다.
- 때로는 책상 점프를 서사에 통합할 수도 있다.
- 책상 점프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플레이어의 동기와 능력이 캐릭터의 동기와 일치하도록 게임을 설계하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실력 장벽을 넘기 전에 포기하지 않도록 하려면 실력이 필요 없는 감정 트리거를 사용하여 플레이어의 경험이 지속되도록 유지할 수 있다.
(중략)
초기 경험에 이러한 실력이 필요 없는 감정 트리거들을 가득 채우면 초기 학습 단계를 고통스러운 집안일에서 절반정도 상호작용하는 영화 인트로와 같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
3.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기획을 적용할 때의 현실감이다.
이 책은 확실히 “게임 기획의 정석”인만큼, 그 응용에 대해 뼈저린 조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제시해봤자 업계의 해외 기준이다보니 국내와는 다를 것도 같고. 그런만큼 이 책이 말하는 이상적인 게임 기획 프로세스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특히 한국 게임 업계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가령 이 책은 수많은 플레이테스트와 두려움 없는 도전, 마케팅과 매출 지표를 위해 만들어진 과도한 계획은 게임 기획을 해친다고 이야기한다.
사실이다. 나 또한 과도한 계획이 예상과 어긋나게 흘러갈 때의 폐해를 잘 알고 있고, 그 말에 깊이 동감한다. 게임 기획은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플레이어의 반응에 따라 지금의 계획을 언제든 뒤엎을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프로세스를 따라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투자를 받아야 하기 마련이다. 이 때 투자자들이 알 수 있을만큼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저희는 플레이어의 반응에 따라 계획을 계속 바꿔나갈 겁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누가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를 할 수 있을까.
거짓말로 투자를 받는 것보다는 조금 덜 재밌더라도 확실한 계획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안정적인만큼 투자를 받게 된 많은 게임들은 새로운 관점의 재미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새로운 시도를 위해 청춘을 불태운 이들의 게임이 뒤늦게야 투자를 받고 성공하곤 하지만, 이 또한 여러 경영적 문제로 어그러지기도 한다.
결국 게임 기획의 이상은... 게임 기획의 "정석"은 돈과 인간관계라는 변수를 막기 어렵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 정도가 더 심한 것도 같다.
이건 내 편견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돈 하면 한국 게임사, 한국 게임사 하면 돈, 이라는 인식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거다. 여기엔 여러 역사와 여러 사람이 얽혀 있겠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이로 인한 장점도, 단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게임 기획의 정석에서 제시하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기획 방법과는 종종 대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넥슨의 민트로켓, 크래프톤의 인조이, 스마일게이트의 스토브인디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양성하는 시도들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아마 이런 탓에도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회사를 따로 차리기도 하고, 자본을 최대한 적게 들여 인디 게임 시장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이상을 뚝딱 따라잡기 쉽지 않은만큼 그리 해서 성공한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 괴리를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지.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회사형 인재라고 생각하지만, (넓고 얕게 알지만, 한두 분야에서만 스페셜리스트다) 창업에 대한 꿈이 아예 없지는 않다. 대부분의 게임 업계인은 자기 게이미 하나씩은 맘에 품고 업계에 들어서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래에 직접 창업을 할 이들의 낭만을 응원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시도하고, 그럼에도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의 이상은 돈과 인간관계로 막히기엔 정말 아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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