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성장을 위한 여정

[도서] 이진희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 리뷰

련잉엥용 2024. 2. 18. 19:12

오늘 소개할 책은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이다. (이름이 길다보니 이후로는 <생각법>으로 축약해 부르도록 하겠다.) 이는 이진희 작가님이 집필한 책으로, 2008년부터 게임 시나리오 쪽 일을 하며 <블레이드 앤 소울>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지금은 게임 시나리오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셨다고 한다.

이진희 작가님의 경우 밀리의 서재를 통해 <생각법>을 알게 되며 처음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맘에 밀리의 서재에 게임 기획 관련 도서도 검색해봤는데 생각 외로 도움 될만한 책이 몇 권 있었고, 그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읽은 책이 <생각법>이다. 그런 뒤에 더 많은 게임 기획 도서를 탐독하다 <이론과 실전으로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 이라는 책 (이하 <이론실전>)도 쓰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은 그 책을 읽는 중인데, <생각법>과 <이론실전>에 겹치는 바가 있어 이걸 다시 한번 되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생각 외로 알고는 있었지만 떠올리지 않고 있던 부분들이 있다는 걸 깨달아서 잊지 않으려면 적어봐야겠다! 하는 생각에 <생각법>부터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다.

원래 도서 리뷰는 적어볼 생각이 없었는데 읽으며 느낀 바가 많은만큼 리뷰를 적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이거 좋아! 하고 추천하고 싶으니까. 특히 게임 기획 도서를 읽으며 이 책은 어떤 책이며, 언제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많다. 이건 내가 지망생 초기에 읽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책이 있고, 이건 진짜 실무적인 도움이 되니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된다 하는 책이 있는 반면, 이건 진짜 인디 게임 만드는 사람이 읽어야 한다 하는 책도 있다. 또는 아예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게끔 폭넓은 인사이트, 또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돕는 책도 있고.

그래서 나중엔 이런 도서 타임라인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도서DB를 구축한 뒤에 써봐야지.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 리뷰

'알고 있다' 이상으로 체감하고 공감해야 할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기본 마음가짐 가이드

 

줄을 치고, 메모를 해가면서 읽을 정도로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로써 어떤 수치를 올리고, 어떤 무기를 장비해야 더 효율적으로 살아남는지를 알려준달까? 특히 그 책을 읽던 시기의 나는 스토리텔링과 게임이 주객전도된 스토리 창작자가 아닌, 게임의 문법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기획자의 시선을 가지고 지망생의 발걸음을 떼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이론이 적다보니 내가 가는 방향이 맞을지 고민하며 주춤거리던 중이었다. 레벨업을 하고 수치를 찍긴 했는데 이게 맞는 걸까 잘 찍은 걸까 걱정되어서 사냥터 초입에서 빙글빙글 돌며 쪼렙 몬스터만 잡고 있는 쫄보 상태. 그런 찰나에 이런 도서를 만나게 되어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읽으며 맞아맞아, 나도 이렇게 오해했었는데 아니더라,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정리해서 이야기할 수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게임 공략법 블로그를 읽는 느낌이었다. 블로그에서의 플레이를 훑어보며 내 발걸음을 되짚어보고, 미처 걸음이 닿지 않은 곳도 공략법을 보며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 정도를 알 수 있달까? 내 안에 모호하게 떠다니던 개념을 정립하고 이에 대해 명확한 근거도 제시해준 책이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구석의 시야도 트였다. 쉬운 책이기에 지망생이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읽기 좋다고 느꼈다.

나만을 위한 독서 노트처럼 좋은 내용을 모조리 정리해두고 싶지만... 아무래도 안될테니 내게 핵심이 되는 몇 줄만 정리해본다. 훨씬 더 많고 깊은 인사이트를 주지만, 우선은 아래의 세 지점만.

 

제약이 확실한 상태에서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업무다.
게임 시스템은 게임의 문법이다. 따라서 시각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게임의 문법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면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게임의 시스템이 무엇인지, 각각의 게임 시스템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포인트. 게임 시나리오는 텍스트로 국한되지 않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개인적으로 이 말은 이론 상 알고 있는 것과 별개로 체감하기 어려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지 않으면 게임 스토리텔링은 망하기 십상이다. 게임 스토리텔링은 시스템 안에서 시너지를 내며 그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요새 게임 업계에서 시나리오 쪽 구인을 할 때에 웹소설 연재 작가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이런 '시나리오=텍스트' 인식의 실태를 살필 수 있는 것 같다. 장르나 세계관의 면에서는 비교적 비슷하기 때문에 많이 채용한다고는 해도, 시각화를 전혀 고려해보지 못하는 웹소설과 게임 매체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영화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것을 추천하였다. 나도 다음 학기부터 영화 스토리텔링 수업을 듣고 싶은데, 그 이유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나마 나는 2D 그래픽을 경험해본 바가 있으니 전반적인 시각화 능력이 다소 높을테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 게임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건 지역과 세력 설정이다. 캐릭터(몬스터 포함), 스토리, 배경 모두가 지역과 세력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지역 설정은 그것을 '바탕'으로 게임의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이머들이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매력적인 공간을 거쳐가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스토리텔링이다.

게임 세계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역'이라니, 이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었다. 시야가 넓어진다. 결국 플레이어가 스킵할 수 있는 텍스트와 달리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각각의 요소를 구성하는 기반은 지역이니까. 이에 따라 지역 간의 분쟁과 세력 다툼 등이 이뤄지기도 하고, 그것이 곧 퀘스트에 녹아든다. 게임에서 경험하는 공간 디자인이 곧 스토리가 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 떠오르는데, 이전에 이에 대한 게임 디자인, 맵 디자인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지형지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저 멀리 첨탑 같이 높이 솟은 무언가를 통해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지역의 스토리를 탐험하려는 동기를 제공한다. 공간이 재미있어야 경험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총, 균, 쇠>를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인간에게 자연 환경은 매우 다양한 동기를 제공한다. 식생, 지형, 기후가 인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이것이 전통과 관습을 만든다. 인간사에서 큰 움직임이 일어났던 이유들은 결국 넓게 보면 새로운 기술, 또는 기존의 환경 때문이다. 세계사 공부를 조금 더 해볼 필요를 느낀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에 '예술적'인 뭔가는 없다. 간혹 예술 게임이라며 극찬받는 게임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게임은 높은 확률로 인디게임이다. 인디게임이기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고, 그중 일부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결정적으로 인터렉티브 스토리는 인터렉티브하지 않다. 나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창작자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슬프지만 맞는 말이다. 게임 시나리오는 결코 순수한 예술이 아니다. 상업예술이라면 몰라도. 나 또한 그나마 개중 순수 예술에 가까운 인터렉티브 스토리를 계기로 게임 매체를 선택하게 됐지만, 인터렉티브 스토리의 경우엔 게임이 게임으로 존재하는 이유, 즉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방대한 오픈 월드식 선택지를 제공하기가 어렵다. 사실 그래서도 TRPG 룰을 따온 발더스게이트3가 그토록 각광받은 것 같기도 하다. 오픈 월드까지는 아니어도 이만큼이나 방대한 시나리오와 각각의 선택지에 대해 대응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그 비슷한 신선함을 제공했으니까. 

하지만 제약이 있기 때문에 내 적성엔 오히려 잘 맞아서 다행이기도 하다. 순수 예술의 측면에서 나는 흔히 MBTI로 치면 _ST_ 성향이 발동하는 것 같다. 원래는 INFJ로 분류되어서 나름 _NF_성향이지만, 그 _NF_들 안에서는 "어 난 그 정도로 촉촉한 감성에 엄청난 창의성을 가진 건 아니고..."랄까. 정리하자면 창작에 있어서 정해진 문법에 맞춰서 쓰는 게 더 편하지, 내 맘대로 써내려간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천재는 아니라는 말씀. 그래서 오히려 게임 매체가 잘 맞는 것도 있다. 그런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 오히려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