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성장을 위한 여정

[도서] 이진희 <이론과 실전으로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 리뷰

련잉엥용 2024. 2. 29. 17:48

<이론과 실전으로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 리뷰

취업 전후로 반드시 읽어야 할 게임 시나리오 기획 가이드라인

 

이 도서는 부제가 길다. "RPG, AOS부터 VR/AR까지 게임에 필요한 '진짜' 스토리텔링 만들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딱 봐도 실무적인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구했다. (절판인지라 어려웠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찾아보니 이 책이 오히려 이전에 작성한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보다 먼저 나왔는데, 내용 자체는 이 쪽이 더 심화적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읽는 순서는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에서 <이론과 실전으로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으로 넘어가는 게 맞다고 본다. (이하 '생각법', '이론실전'으로 축약한다.)

솔직히 게임 시나리오 이론서나 작법서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마당에 한국에서 게임 시나리오 쪽을 공부할 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게임 기획 도서 분류 중에서는 '실무적인 도움이 되니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된다 '에 가장 가까운 도서. 그럼에도 여전히 개괄적이라면 개괄적인 내용이지만, 그보다 깊이 들어가려 해도 게임 장르마다 작법론이 달라지고, 장르 내 게임의 특수성마다도 달라지며, 무엇보다 회사나 부서마다도 달라지는 내용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취업 도움 도서' 중 세부적인 분류를 해보자면 취업 포트폴리오 제작보다는 면접에 더 많은 도움이 될 듯.  그렇지만 한국에서 게임 시나리오 방면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한번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일 것 같다. (절판이 다시 아쉬워진다.) 

실질적으로 읽은 기간은 대략 4~5일 가량. 장마다 내용이 꽤나 갈리므로 되도록 한번 읽을 때엔 장 단위로 나누어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중간에 심화적으로 파고드는 장은 분량이 꽤 되니 이를 참고해서 읽을 것.

도서를 읽으면서 '국내 게임 스토리텔링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많진 않고 마니아 몇몇만 지적한다.'라는 뉘앙스의 대목이 있었다. 다시 말해 게임 개발사는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에 많은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지점을 계속 고민해야하는 이유는 게임 시스템과 시나리오는 뗄 수 없는 관계여야만 완성도 높은 게임, 여운을 남기는 몰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게임 시스템에는 당연히 스토리가 녹아들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녹아든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진정한 게임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달성하는 것이다.

아래는 또다시 도움이 되는 내용 중 일부만 정리해보았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다수의 주인공'이라는 중간적 관점의 스토리 구조는 고전적인 스토리 작법을 완전히 적용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에 어려움이 있다.
MMORPG 퀘스트 구조의 한계는 플레이어가 조력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중략)... 남(시작 NPC)의 스토리라도 나(플레이어)의 스토리처럼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조력자임에도 스토리의 주인공처럼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 도서가 도움이 되는 가장 큰 이유. 바로 국내에서 가장 성행하는 MMORPG 장르에서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답을 준다는 점이다. 물론 겜바겜으로 개발 과정이 많이 달라지는 게임 업계 특성 상 실무적으로 세세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현업을 이제 막 맛보기 시작할 지망생들이나 신입 기획자에게 도움될 수준으로 최소한의 '벗어나지 않을 기준선'을 제공한다.

특히 중요한 지점은 바로 게임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명확히 제시한다는 점. 내가 읽은 또다른 도서에서는 "게임 스토리는 기존 고전적 스토리텔링 방식과 다르게 구성되므로 더 연구할 부분이 많다."로 결론을 지었기에 나같은 지망생은 "그런 상황에서 나는 뭘 더 해야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책이 비교적 이전 책이기는 하다.) 연구자에게는 좋은 결론이지만, 지망생에게는 열린 결말이므로 결론이 결론으로 남을 수 없다는 소리.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보다 확실한 결론을 제시한다.

 

어렵게 찾은 답이 '훅'이었다. 훅을 활용하면 퀘스트 구상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퀘스트의 완성도 역시 더 높일 수 있다.
본격적인 퀘스트 작업에 앞서 기본적인 동선은 정리되어야 한다. ...(중략)... 스토리가 다소 어색하더라도 동선을 우선시하는 것이 MMORPG에 맞는 방향성이다.

위의 결론에서 연결되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들. 이 도서는 MMORPG 게임의 특징과 이에 맞추어 새롭게 쓰이는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제시하며 '괜히 MMORPG라는 특수한 장르에 고전적 스토리텔링을 차용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언과 함께 '그렇지만 이 부분까지는 써도 좋다'와 '이 부분은 어렵지만 그 안에서의 우선순위는 ㅇㅇ이 먼저다'와 같이 나름의 이정표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당연히 그 부분에서 어느 지점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정교하게 고민하는 것는 내 몫의 숙제이지만, 그걸 고민하는 과정에서 MMORPG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찾아갈 수 있다.

이 도서에서는 고전적 스토리텔링과의 차이점과 한계점을 명확히 제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집중할 부분을 명확히 알려준다. 특히 MMORPG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스토리텔링을 포기해야만 하는 지점, 나의 업무에만 몰두해 큰 그림을 보지 못할 수 있는 위험을 알려주며 나의 시야를 넓혀준다. 이 또한 알고는 있어도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아마 현업에 돌입하면 또 다르게 깊은 공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모르면 안되는 부분이다. 분명 지금의 나도 가슴에 새겨야 할 사항이다.

 

캐릭터 수집형 RPG라면 세력 설정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세력 설정이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캐릭터를 추가할 때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세력들의 목적이 서로 충돌해서 갈등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 중심 게임에서 세력 설정은 정말 중요하다.

MMORPG 이외에도 캐릭터 수집형 RPG에 대해서도 큼직하게 다룬만큼, 국내 게임 개발사에서의 게임 시나리오 라이팅 노하우는 확실히 가져갈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캐릭터'를 가장 주되게 사용하는 캐릭터 수집형 RPG는 무엇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의 약점은 무엇이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또 어떤 도구를 보조하여 써야할지를 제시한다.

특히 이전 도서인 <생각법>에서는 지역과 지형, 환경 등을 강조한 것과 같이 이번 도서 <이론실전>의 캐릭터 수집형 RPG 관련 장에서는 '세력 설정'을 강조하는 편이다. 많은 사람이 얽혀야만 하는 스토리, 그리고 NPC를 만나는 도시와 몬스터를 만나는 야생이 공존하는 MMORPG에서 스토리의 시작과 마무리는 상당 부분 도시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도시에서 가장 큰 지역적 특징은 아무래도 많은 세력이 공존하며 그 구조를 구축한다는 점. 캐릭터, 세력, 지역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게임에 녹아들어 시스템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만 좋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