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게임 제작의 발자국

[H] 인디게임 'H' 개발 후기 (1)

련잉엥용 2024. 8. 7. 23:23

0. 팀 프로젝트의 마무리

 

최근 게임 제작 연합동아리에서 내가 팀장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프로젝트 자체가 완전히 종료된 건 아니고, 지금은 동아리의 정규 학기가 마무리되며 함께 끝낼 준비를 시작한 단계이다. 지난 주에 정규 학기의 최종 발표 및 시연회도 완료한 상태이다.

앞으로 대학교 동아리 연합 발표회가 있을 예정이라 이를 위해 지금의 빌드를 수정하고 다듬어나갈 예정이며, 이후로는 팀 활동 자체는 잠정 종료하되 2024년 하반기의 인디 게임 공모전만 살금살금 건드려볼 예정.

 

 

 

1. 시작은 미미했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제안한 게임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동아리를 2년 가량 지켜보고, 햇수로는 3년째가 되어가는만큼 나는 우리 동아리의 생태를 잘 알고 있다. 우리 동아리에서 꾸려지는 정규 프로젝트 팀은 인디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대학생이 모이는만큼 다양한 인재들이 모이곤 하지만, 그만큼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방향성으로 합치시키는 과정이 매우 힘들다.

특히 합치가 된다 한들, 개인의 일 우선순위가 바뀌면 팀 전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이다.

 

 

가령 팀원 한 명이 취업에 성공한다면 자연히 회사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진행되던 팀 프로젝트는 뒷전이 되곤 한다. 하지만 팀 자체가 굉장히 컴팩트하게 구성된만큼 모든 인원이 개발의 코어가 되기에 팀 프로세스 자체에 위험이 닥치게 된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졸작을 하느라 바빠서, 만들면서 수정된 게임의 방향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맡게 된 업무가 자신의 역량에 맞지 않아서 등등 각기 다른 이유로 팀에 리스크가 닥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팀에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동아리에서 만난 대학생들끼리 만드는 인디게임은 아무래도 그 목적이 포트폴리오형이든, 창업형이든 팀원에게 돈을 줄 수 없다. 순전히 개인의 열정에 의존하는 구조이기에 취약한 것이다. 더군다나 각자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어가려는 것이 다른만큼 그것을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해서도 안된다.

 

우리 동아리에서 만들어진 팀 프로젝트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나는 새로운 팀을 꾸려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

그럼에도 이곳에서 만나고 인연을 맺는 사람들 중 그 리스크를 거치면서도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동아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실 애초에 내가 더 얻을 수 있는 게 그것 뿐이기도 했다. 난 더이상 우리 동아리에서 게임을 만들어서 얻는 것이 그리 크지 않다. 현재 내 단기적인 목적은 결국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2년 간 이 동아리에서 구르며 대학생 인디게임 팀으로 얻어갈 수 있는 대부분의 메리트는 직간접적으로 전부 경험해봤다.

이 때문에 게임을 구상하며 내 분야를 고집하지 않기도 했다. 좋은 게임 팀을 결성하기 위해 만들기에 매력적인 게임을 만드려면, 특히 프로그래밍의 구미를 당기는 게임으로는 내 강점인 '시나리오'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또, 나 스스로도 시나리오 외의 기획을 건드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던 만큼 나는 내 강점을 포기하고 새로운 분야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제안하게 된 것이 H, 한국풍 2인 협동 액션 게임이다.

이 게임은 내가 지망하는 분야, 게임 시나리오의 분량이 정말 크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는 부가적인 연출이나 콘텐츠, 전투의 부분이 강하다. 내 시야가 넓어질 수 있는 기회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 미래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더군다나 난 아직 다른 동아리원들, 다른 게임 마니아들보다는 게임 메커니즘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기획 도서를 많이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의 성장을 한 뒤에 그럴듯한 게임을 하나 생각해내게 됐다. 그렇게 구상한 내 게임이 기획적으로 엄청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당히 큰 규모로, 적당히 재미있는 정도로 적당히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며 좋은 사람들의 포텐셜을 확인하는 게 내 개인적인 큰 목적이었던 만큼, 나는 우리 팀의 방향성을 "좋은 포폴, 좋은 팀을 위한 데모 기간 6개월"을 설정해두었다. 팀원 간의 방향성을 확인해가는 것도 중요하기에 이것에 큰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이었다. 함께 재밌게 팀 프로젝트를 해봐요, 그것이 나의 제1순위 목표였다. 단, 명확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팀 프로젝트는 빡세게 진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팀원들에 대해 엄격한 감시를 하거나, 통제를 하려 해도 나는 그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순전히 방치형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팀을 구상했다. 물론 이 방법도 꽤나 그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목적에서는 더없이 잘 들어맞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팀장 분 중 한 분은 나와 반대되게 순전히 통제형인 팀을 구상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만 들어오도록 꾸려나가는 걸 보았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결과를 보면 방법도, 방향성도 다르지만 각자의 성공을 이뤄낸 것이 새삼스레 신기하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홍보한 팀 프로젝트는 꽤 좋은 팀원들을 만나게 됐다. 나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나의 의도, "재밌게 작업합시다"를 설파했고 이에 동의하는 이들을 불러모았기 때문에, 팀 작업을 하는 내내 즐거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2. 팀원을 잘 만났다

 

감사하게도 팀 빌딩 때에 많은 지원서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인기가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역시 동아리에 대한 내 이해도 때문이었다. 내 이력을 보고, 내 기획 의도를 알아차린 이들은 내가 팀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나중에 모인 팀원들에게 왜 이 팀에 들어오고 싶었는지 확인을 받고자 했을 때에도 기획적인 면모 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팀장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제안서를 보며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뭐라도 결과가 뚜렷이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저런 자격과 요구사항이 가득한 다른 팀 제안서를 보면서 내 역량이 강한지 확신이 안 섰다. 그렇지만 H팀은 내가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성장을 독려하는 팀 분위기를 설정한 것이 맘에 들었다.

 

이렇게 모인 팀원은 모두 동아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우리 팀에는 이전 동아리 회장, 그리고 현재의 동아리 회장이 모두 존재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현생을 살기 바쁘지만, 우리 팀과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꺼이 시간과 열정을 쏟을 줄 알았다.

나는 이들의 열정이 정말 고마웠다. 지금까지 2년 간 봐온 동아리 팀 프로젝트를 보다보면 그게 부족해서 멸망(?)한 팀이 수두룩했으니까. 이들이 내 팀에 그만큼 믿음이 있다는 게 느껴져 그만큼 나도 자극을 받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갈 수 있었다.

 

고마워...

 

다른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게 팀이 그렇게 갈등 하나 없이 모두가 친하고 화목하고 재밌게 활동할 수 있냐고.

물론 갈등이 없고, 빌런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 이야기는 동화같았을 것이다.

최대한 갈등을 없애고자 만든 환경에서도 어김없이 갈등은 발생한다. 하지만 인간 간의 갈등은 예측 가능한 갈등이었던만큼, 내가 수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물론 나도 그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던 건 아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팀원들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외부에서 보기에도 전혀 티가 나지 않고, 지금까지 팀 활동도 잘 이어질 수 있었던만큼 잘 이겨냈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모두의 우선순위를 존중하되, 그것이 팀의 우선순위를 저해하지는 않도록 타협을 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런 과정에서 아예 잃게 된 팀원도 있고, 다시 보게 된 팀원도 있다.

 

물론 나도 완벽한 팀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바빠서 일이 늦어지는 때도 있고, 기획서를 전달하고 구현이 된 뒤에야 문제를 인식하고 수정을 요구한 적이 있고... 하지만 솔직하게 인지하고 사과를 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렇게 남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팀이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물론 내가 그런 팀원을 뽑을 수 있게 게임 제안 단계부터 많은 구상을 하려 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인데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함께 일한 기획자 친구는 내가 약한 전투 분야에서 힘쓰며 게임의 재미를 곱절로 발전시켰고, 개발 외적으로도 나 대신 프로젝트 매니징 시트를 만드는 등 PM일을 많이 맡아줬다. 또 프로그래머 오빠는 나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정말 잘 맞아 매번 감사할 일이 많았다. 모든 팀원이 동아리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쓰며 팀장의 업무를 훤히 꿰고 있었기에 훨씬 더. 이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 팀은 지금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바쁜 상황에서도 언제나 작업물을 추가로 가져오면서 그 퀄리티가 엄청나서 놀랐던 아트 언니, 추후에 들어와 제대로 인수인계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자의 작업을 기대 이상으로 해주었던 다른 프로그래밍 오빠와 아트 언니, 그리고 사운드 언니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감사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모두가 각자의 업무 이상으로 능력자였다.

이들을 만난 데 대해 감사하다. 나는 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가능한 한 오래 보고 싶다.

 

 

 

오.

아무래도 1년 간 진행한 팀인만큼 할 말이 많다. 글을 한 번 끊고 다음 글에 이어쓰려고 한다. 머슥.

여기까지 팀원 관련 후기였다면, 기획이나 개발, 팀 매니징 측면에서의 회고적인 내용은 이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