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게임 제작의 발자국

[개인] 2023 회고: 나를 인정하는 시간

련잉엥용 2024. 2. 6. 14:15

갓생 소모임에서 <2023 회고 + 2024 목표> 이벤트를 진행 중이어서 겸사겸사 이렇게 글을 써본다. 작성하다보니 많이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있어서 이 글을 소모임 사람들이 전부 볼 수 있도록 제출할지는 모르겠다. 아마 편집해서 내겠지? (왜냐면 안 궁금한 TMI 천국이라...) 그래도 이렇게 한 해의 회고를 통해 내가 성장한 부분을 되짚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좋은 습관인 것 같다.

한 줄 요약: 겁나 긴 일기장이다. 별로 읽는 맛은 없으니 돌아가시오. 난 경고했다.

 


2023년은 성장의 해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2022년에 비해 이룩한 정신적인 성장이 나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컸다. 내 제1원동력이 바뀌었달까?

내가 평소에 캐릭터를 분석하듯 나를 분석해보자면, 나는 원래 타인의 시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내게 있어 제 1의 원동력은 곧 타인의 인정이었다. 때문에 나의 성취는 대체로 보여주기식 성취 위주였고, 나는 내 스스로의 장점을 드러내려 무던히도 애썼다. 어찌 보면 완벽주의에서 기인한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완벽주의 때문에 완벽한 내 모습만 인정받으려 하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은 부정하던 모습들이 가끔 떠오른다. 인정한다, 나는 2022년까지만 해도 꽤 피곤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가령 나는 내 자랑을 곧잘 한다. 조금 핀트가 어긋난 주제더라도 내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말할 수 있는 주제라면 아 맞다! 하며 신경쓰지 않는 척 이야기한다. 그런 뒤에 칭찬을 받으면 에이 그런 거 아냐 하면서 수줍게 부정한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이야기해놓고 겸손한 척도 한다. 이게 뭐람. 어쩌란 거야. 하나만 해. 지금은 안...까지는 아니어도 '덜' 그런다. 자랑을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TPO를 봐가며 참거나, 최소한 자랑을 하더라도 뻔뻔하게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능청을 갖췄다. 그냥... 이건 사회성 부족도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타인의 인정 때문에 스스로를 갉아먹다가 어느 순간 그게 너무 지쳤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 이상과 현실이 맞닿지 않는 부분을 계속 메꾸는 게 힘들었다. 좋은 사람, 멋있는 사람도 하루 쉬어갈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다보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평판과 소문 하나하나에 마음 쓰며 지나치게 에너지를 소진했다. 난 가뜩이나 엄청나게 생각 과다인 overthinker인 사람인데 생각이 점점 더 많아졌다. 나의 생활 반경이 넓어질 수록 더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을 신경쓰게 되었다. 그렇게 2023년 초, 에너지가 고갈되고 "이번 해는 기력을 모두 소진해서 쉬어갑니다"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상반기에는 그토록 열과 성을 쏟았던 게임 제작 동아리도 쉬고, 인간관계를 최소화했다. 사람들과 약간의 거리가 필요했다. 체력이 없던 그로기 상태였으니까. 오롯이 학업에만 집중하고, 나의 내실을 단단하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홀로 서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처음엔 인정을 줄 타인이 없어 많이 위태로워했다. 할 일은 잘 해나갔지만 그에 대해 OK 컨펌을 줄 사람이 없다보니 불안한 기분이랄까? 버릇을 못 고치고 인정을 받으려 새 그룹, 새 인연도 만들어보고 그 안에서 또 인정을 받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하는 내가 "짜쳐" 보였다. 음... 그냥 귀찮기도 했고. 그러기엔 아직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인정을 받기엔 지치지만 필요로는 하고, 일주일에도 몇번씩 "사람 만나고 싶다"와 "사람 만나는 약속 다 취소하고 싶다"가 공존했다. 안정화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 5~6월 즈음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 때부터는 갑자기 괜찮아졌던 것 같다. 어느 순간 타인의 인정이 없더라도 뭐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냥 바빠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때 기말고사 때문에도, D 프로젝트 출시 때문에도 일이 밀려오다보니 인간 관계고 자시고 앞에 놓인 일부터 해소해야 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생기고 하다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 때부터인가 나의 지론이 생겼다.

"옆구리가 시려우면 발등 불로 뎁히면 됨"

진짜다. 아주 효과적이다. 슬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정말 이게 효과적이어서 좋은걸... 나는 원래 이게 잘 될까 걱정이 많은 만큼 그 걱정을 가두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그러니 그걸 따라가기 바쁘도록 만들어서 내 뇌를 쓸데 없는 걱정에서 분리시키는 느낌? 그보다도 일이 너무 재밌었다. 그럴 때엔 외롭지 않았고,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완벽한 해결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기분이랄까. 바쁘게 살며 걱정을 몰아냈다.

무엇보다 내 심지가 단단해졌다는 게 느껴진다. 그 전까지는 높은 공감능력이라는 핑계로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네가 싫으면 나도 싫어 식의 스탠스를 취했다. 그게 편했으니까. 타인의 시선 탓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배우는 입장이라고 느꼈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입장이므로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지하고자 그런 유동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2022년이 나에게 있어서는 다시 일어서게 된 해이기 때문에, 내가 일어난 뒤에 다시 주저앉지 않을까 계속해서 걱정하며 살았었기 때문이다. 불안한게 당연했고, 아직 걸음마를 막 뗀 것마냥 내 균형을 찾지 못하던 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메타몽처럼 변하곤 했는데 이젠... 그래도 조금 심지가 생겼다. 비유하자면 '척추동물 메타몽'이 되었다. 이런 표현이 맞나?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 나의 취향, 나의 신념, 내 불호 성향과 내 환경이 합쳐지고,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시선으로 날 이해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생긴 기분이다. 내가 나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나니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물론 여전히 두렵다. 또 물론 아직까지도 타인의 인정은... 짜릿하다. 너무 즐겁다. 도파민 중독처럼 인정 중독이 있다면, 아마 난 그에 대한 재활 치료 중인 것 같다. 그래도 좋은 건 어떡해, 지금부터라도 잘 영위해야하지 않는가. 내가 살아온 인생을 바꿀 수는 없으니 앞으로 계획이나 잘 세우고 잘 따라야지. 여기까지 성장한 것만 해도 나는 나를 칭찬하고 싶다. 사회 초년생이 조금 부딪힐 수도 있지. 최소한 남한테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있다면, 최소한 그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이 또한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므로 나의 현재 원동력은... 성장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더 멋진 내가 아닌, 내 시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미래의 나를 목표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어쨌든 나의 현재에 대해 나는 자신감이 넘친다.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니 부끄럽지 않다. 어쩔 때엔 지나치게 관대하기도 하고, 어쩔 때엔 지나치게 통제하기도 하지만 그것 모두 내가 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획에는 절대 뒤처지지 않게끔 노력하고 내 원동력을 유지하는 것의 일환이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나를 이해하고, 평가하고,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나를 나의 잣대로 판단하기까지 참 힘든 길로 돌아왔다. 진작 이렇게 할 걸 하는 아쉬움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때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고, 생각이 좁아진다. 그 상황에서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넓히려 노력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게임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하며 많은 프로젝트가 터지고, 갈리고, 힘들어하고, 끝끝내 실패하거나 성공하는 모습을 봐오며 이전에는 비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점차 모두 이해가 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환경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건 여전히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내가 잘못된 잣대에 나를 두어 고생한 것을 알기에 타인 또한 타인만의 잣대로 판단하게끔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성향이 안맞는다'는 평은 남겨도 그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 또는 '싫어서 다시는 보기 싫다'는 평은 남기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무리 비상식인이어도 그 사람만의 환경을 살다보면 그게 상식이 될 거다. 성장을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걸 그 사람 탓을 할 수는 없는 거다. 더군다나 탓해봤자 결론은 "인디가 인디했다"와 같은 인디 게임만의 특수 상황이었던 경우가 태반이라.

느낀 바가 무궁무진하지만, 그래봤자 주저리주저리 비슷한 방향의 내용을 늘어놓을 것 같기도 하고, 다음 글에 적을 내용도 남겨둬야 하니까 오늘 이 주제로는 여기까지. 2024의 목표까지도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여전히 성장 중이고, 여전히 재활 중이지만, 그러므로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2024년엔 유지부터 잘 하고, 조금만 더 성장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