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7월, 23(금)~26(일)일 진행되었던 넥슨 대학생 게임잼에 참여했다.
성과는 최우수상(2위).
이에 대해 느낀 바가 많은데 벌써 6개월 가까이 되었다보니 더 까먹기 전에 그 회고를 적어두려 블로그 글을 호다닥 작성해본다. 마침 최근에 여기서 만든 게임을 스토브 인디에 출시하기도 했고, 따로 또 이쪽 팀장님과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이 있었기에 그 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기도 해서... 겸사겸사.
이런 글을 쓰는 건 처음인데 차근차근 써보는 과정을 통해 또 많이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기엔 개인적인 후기가 좀 더 큰 것도 같지만.
+ 중간에 쓰다가 세이브 파일이 한번 날아갔다... 그래도 어쩌겠어... 써야짓...
+한번 더 날아갔다... 많이 썼는데... 짱화남... 하지만 어쩌겠어... 또 써야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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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
계기는 꽤 간단했다. 그냥 오랜만에 게임잼을 나가고 싶던 참에 동아리 톡방에 관련 공고가 올라왔다. 잠깐 여유로운 기간이 두어 달쯤 생겼이다. 이 동안 새로운 프로젝트를 잠깐 하고 끝내는 재미를 느끼기엔 게임잼이 제격이었다.
마침 대학생 전용에, 마침 넥슨에서 주최한다길래 이런 좋은 기회는 더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냉큼 신청했다. 기획 포지션과 아트 포지션 중에 고민했는데, 아직 내 기획 실력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당시 내 실력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아트를 1순위로, 기획을 2순위로 지망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트로 합격했다.
딱히 수상을 바라고 신청한 것도 아니고, 이미 게임잼 경험이 조금 있던만큼 무언가를 특별히 배우고자 참여한 것도 아니고(물론 넥슨 현업자 분들께 무언가를 얻어간다면 좋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만큼 이것도 부가적인 것이었다), 그냥 재미삼아서 신청한 거라 수상하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의 마인드였다. 더군다나 게임잼은 특성 상 어떤 팀원을 만날지도 모르는만큼 팀 운이 나의 수상 운도 좌지우지하니까... 정말 편한 맘으로.
오히려 사소한 여담이지만, 당시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숙소였다. 숙소 제공을 따로 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서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할 셈이지...? 라는 조그맣고 사소한 고민. 나는 2일 연속 밤샘할 체력은 되지 않기도 하고, 모든 인원을 다 이틀 밤샘을 시킬 것도 아닐텐데... 다 안 재우지는 않을 것 같은데... 싶었다.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안 잡혔다. 나와 함께 합격한 동아리 사람들 두어 명을 모아 따로 도보 20분 거리의 숙소를 하나 잡았는데 그러면서 어째서 숙소 제공이 없는지 알게 됐다. 판교 근방에는 숙소 될만한 곳이 싸그리 싹싹 없더라. (아 있었는데? 아뇨 없어요 그냥.) 아무튼 게임 개발을 하는 중에는 강당을 휴게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고 따로 샤워실도 있어서 먹고 자고 쉬는데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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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식
행사 당일, 판교의 넥슨 사옥에 도착했더니 아는 사람이 무지 많았다. 아무래도 외부에 재밌넥 홍보를 많이 하지도 않은 것 같고, 나도 동아리 톡방에서만 보고 신청해서 그런지 알음알음 퍼져나간 게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다들 참여한 인원 중 거의 열 명 가까이 우리 동아리 사람이 있던 것 같다. 다 개별 신청이었는데도 주변을 둘러보다 어!? 너도?하고 놀란 적이 많을 정도로...ㅋㅋㅋ
아무튼 강당에서 개회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메이플스토리 디렉터 강원기님이 등장하셨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현직이시기도 했고, 워낙에 게임 좀 한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예인 같은 분이다보니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제가 나왔으니 이번 게임잼 주제는 대충 눈치 채셨겠죠?"라는 강원기 디렉터님의 말씀과 함께 주제가 곧 공개 되었다.
주제는 "단풍".
단풍... 쉬운 듯 보였지만 막상 무언가 참신한 기획을 떠올리기엔 마냥 막연한 느낌이었다. 그 때만큼은 내가 기획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좋은 기획을 떠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때의 내겐 기획 분야가 미숙해서인지 몰라도 진부한 것들만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선 좋은 기획이 나올 거라는 부푼 마음을 안고 실제 팀 빌딩과 개발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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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빌딩
팀 빌딩은 피그잼과 디스코드를 통해 이뤄졌다. 피그잼에서 기획 직군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을 어필하고, 나머지 아트와 프로그래밍 직군은 아래에 자신의 직군과 이름,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업로드하며 어느 분야에 강한지 본인을 어필했다. 디스코드로는 각각의 기획에 대해 개선점을 제안하거나, 본인을 어필하는 식이었다.
나도 피그잼에 내 본인 어필을 마치고 난 뒤 찬찬히 기획을 훑어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기획이 있었다.
턴제 디펜스 리듬게임 형식의 게임이었는데, 읽어보니 게임도 참신했고 컨셉도 귀여워서 잘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딱 보기에도 제일 탐이 났다. 컨셉은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동시에 메이플 시럽을 탐내는 몬스터들도 퇴치해야하는 악덕 기업 고용인, 이라는 스토리였으며, 게임 명은 '시럽 시럽 메이플 시럽'이었다.
누가 기획했는지를 보니 아는 분이어서 놀랐다. 개회식 때 어!? 너도? 했던, 동아리 내 기획 소모임을 함께 한 익숙한 분이었다. 평소에도 굉장히 새롭고 참신한 기획안을 내시곤 해서 함께 일해보고 싶다 생각하던 분이었는데 마침 반가웠다.
그래도 무작정 '저 그 기획 탐나는데 우리 아는 사이니까 껴줘요!' 하는 건 예의가 아닐 뿐더러, 당연하지만 나도 내 실력을 통해 정당히 들어가고 싶었으므로 우선 어떤 그림체를 생각 중인지, 무엇보다 2D를 생각 중인지, 3D를 생각 중인지부터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바를 피그잼을 통해 질문 포스트잇을 만들어 적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 기획자가 나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고서는 혹시 관심 있으면 제 팀에 들어오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당연하지!를 연발했다. 그 사람은 안 그래도 내 그림을 평소에도 봤었으니 알고 있었는데 마침 스타일이 잘 맞을 것 같고, 이미 실력이나 협업 능력을 아는 사람과 함께하는 편이 팀을 꾸리는 데 있어 리스크도 적으니 제안했다고 했다.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했다.
마침 그 기획자 분의 옆 자리에 있던 프로그래밍 분도 한 분 합류하기로 했던 차였기에 이제 우리 팀에는 아트와 프로그래밍이 각각 한 자리씩 공석인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셨다. 기획자 분은 나와 이미 합류한 프로그래밍 분께 각자가 협업하기 좋은 분으로 선정하는 게 더 낫겠다며 각 포지션에 대한 선택권을 일임했다. 매우 고마웠다...
그 때 당시에 지원해주신 아트 분이 크게 두 분 계셨다. 한 분은 2D 프레임 바이 프레임 애니메이션을 정말 잘 하시는 분이셨고, 한 분은 3D와 2D를 모두 폭넓게 잘 하시시는 분이셨다. 애니메이팅이나 3D 모두 내가 아주 강한 분야는 아니었고 두 분 모두 너무나도 멋진 포폴을 보여주셨기에 누구와 하든 굉장히 좋은 결과가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가운데 내게 있어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은 명확했다. 전자는 쉬운 길, 후자는 어려운 길.
나는 3D 게임은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으며, 오로지 2D리소스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만큼 후자의 경우엔 2D와 3D를 섞는 식의 새로운 시도가 필수였다. 게임잼에서 이 정도의 시도, 새로운 리스크를 선택하는 건 아예 게임 아트 컨셉이 모 아니면 도가 된다는 소리였다. 최고로 잘 어울리는 2.5D게임을 만들거나, 정말 안 어울려서 이게 뭐야 싶은 컨셉으로 가거나.
하지만 그렇다고 전자를 선택하자니 결과물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갈 뿐더러, 무엇보다 작업의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애니메이팅에서 작업 속도가 0.25배가 되는 사람이다보니 그 분이 대부분의 애니메이팅을 담당하시게 될 것 같은데, 대부분의 리소스에 애니메이팅이 들어가게 될 거라 대부분의 작업이 그 쪽으로 쏠릴 듯 했다. 나는 너무 죄송하고 그 분은 너무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게임잼이니만큼 리스크를 감수해보자고 맘 먹었다. 무엇보다 2D와 3D를 합칠 때에 레퍼런스로 무엇을 삼아야할지, 전반적인 아트 컨셉은 어떻게 할지, 무엇으로 2D와 3D 간의 격차를 줄여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기획자에게도 이 상황을 설명해 동의를 구했고, 구인을 제대로 마쳤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나머지 프로그래밍 직군 한 분도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팀 '시럽자들'이 만들어졌다. (이름은 내가 제안했다. 머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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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정
개발 과정은 꽤나 순조로웠다. 지금까지 했던 게임잼과 비교했을 때, 시간 관계 상 원하는 기능을 한두 개 빼야 한다거나 하며 예상했던 규모를 축소해야 했던 지난 경험들과 달리 계획한 대로 만들고, 퀄리티 업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게임의 규모도 이전 게임들과 뒤지지 않고, 오히려 시스템적으로는 더더욱 발전한 스케일이었던 것 같다.
그 덕에는 역시 팀원들의 공이 컸다. 모두가 자신의 작업에 열정적으로 임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였기에, 각자의 분야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던 것 같다. 초반에 팀장인 기획자가 빠르게 치고 나가며 기획을 전달함과 동시에 프로그래밍 직군은 함께 로직에서 빼먹을 수도 있는 정교한 부분을 검토하며 구현을 시작했다. 옆에서 들으면서도 정말 세세하다고 느꼈다. 이런 시스템 구축이 탄탄하다보니 더더욱 변수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옆에서 듣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도 내 자리에서 할 일을 열심히 했다. 먼저 기획자가 번거롭지 않도록 게임에 대해 완벽히 이해한 후 이에 필요한 모든 아트 리소스 목록을 쭉 써내려갔다.
그 다음으론 다른 아트분과 협의를 해보았다. 작업 분배에 있어서도 다른 아트 분께서는 최대한 3D에만 집중하실 수 있도록 UI는 내 작업 쪽으로 가져오고, 대신 2D와 3D 리소스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2D 캐릭터에 간단한 squash&strech 애니메이팅을 부탁드리는 식으로.
내가 3D 작업을 아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대략 나와 작업의 규모가 비슷한 수준이게끔 진행을 한 뒤에, 애니메이팅 같은 경우엔 내 쪽에서 먼저 리소스가 나와야 했으므로 이에 대한 우선순위도 함께 설정해 공유 드렸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아트 컨셉의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색의 제한'이었다. 게임에서의 색상을 최소화하여 세피아 톤에 간단한 음영만을 넣은 후, 강조할 부분, 즉 단풍의 '붉은 색'은 강조하여 포인트컬러로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레퍼런스로는 <페이퍼 마리오>와 <Tangle Tower>, 그리고 이전에 우리 동아리에서 아주아주 잘된 너무 멋진 선배님들의 인디게임 갓겜인 <KILLA>를 생각했다. (엄청난 갓겜. 많관부.)
메인 캐릭터와 그의 악덕 고용주(?)도 이 컨셉에 맞게끔 붉은 색이 주된 컬러로 쓰일 수 있는 드워프와 드래곤을 떠올렸다. 특히 둘의 관계 또한 중세 판타지 설정 상 대부분이 종속이나 고용 관계라고 알고 있기에 잘 맞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메이플 시럽을 좋아하는 드래곤, 그에게 납치되어 시럽을 만들게 된 드워프... 이런 느낌. 기획자와 함께 의논하며 귀여운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몬스터도 단풍의 붉은 색채를 무채색인 몸에 채워나가는 흡혈 박쥐의 컨셉으로 잡아 무채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며 직관적으로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몬스터를 만들었다. 설정 레퍼런스로는 어드벤처 타임의 마셀린을 비롯한 뱀파이어 종족 설정을 떠올려서 만들었다.
이렇게 했을 때의 장점은 무엇보다 채색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리소스 제작 시의 채색 작업이 오래 걸리는 데 반해 단색에 붉은 색만 강조한 후, 1차 명암 까지만 넣으면 되는 것이다. 작업 시간이 대폭 감소함에도 보기에는 2D 리소스와 3D 리소스 건의 통일감이 증가할 뿐더러 컨셉까지 명확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툰 렌더링 문제로 프로그래밍 분들을 귀찮게 하고, 아트 분과도 2D리소스와의 세피아톤 색감 차이를 맞추기 위해 여러 차례 컨펌을 거쳐야만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주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중간 중간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를 휴식 시간으로 잡으며 나머지 시간에는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건강한 협업(?)이 이뤄졌고, 휴식 시간에도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서로와 조금씩 더 친해진 것 같다. 팀장님이야 원래 알던 사람이니 친하다지만, 아트 분도 알고보니 내가 동아리를 휴식할 동안 들어오신 같은 동아리 사람이었고, 프로그래밍 두 분도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재밌게 이야기를 하며 지친 심신에도 리프레쉬가 되었던 것 같다. 밤에는 함께 나가 편의점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판교는 토요일 일요일에 전부 다 문을 닫아서 어쩜 편의점이 문을 닫을 수 있지?! 하는 충격에 휩싸이기도 하면서... 재밌었다.
한편 나는 미리 말한대로 체력 이슈로 첫날 밤에 먼저 숙소에 들어가보겠다고 했다. 애초에 나올 리소스가 정해져있고, 그 중 반절 가량은 마무리 지은 상태였기 때문에 완성까지는 전혀 문제 없는 진척이어서도 더더욱. 게임잼에서 체력 관리는 필수다. 막판에 집중이 안돼서 퀄리티를 날려먹는 경우를 종종 봤다.
어쨌든 그로기 상태는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이왕 그럴 거라면 자신의 체력을 잘 알고 그에 맞춰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는 게 뭣모르고 무리하다 예정된 바를 못하고 뻗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래서 난 다른 팀원들에게도 미리 말한대로 기존에 함께 숙소를 예약한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20분을 걸어가 숙소에 도착해서 깨끗이 씻고 작업 조금 더 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돌아와 두번째 날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 날 저녁 쯤에 내 할일을 대강 다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약간의 퀄리티 업을 신경쓰기도 하고, 다른 아트 분의 작업 중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기도 하고, 팀장이 추가로 요청한 리소스를 만들며 다소 여유롭게 팀 전체를 보조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특히 기획자와 함께 부가적으로 즐길 스토리도 조금 더 신경을 쓰자고 말하며 이런저런 컨셉을 더 제안하고, 컷씬까지 구상하고 제작할 수 있었다.
또 중간에 강원기 디렉터님이 오셔서 피드백을 해주시기도 하고, 팬 싸인회(?)를 해주시기도 했다. 그 상황에 모두가 지쳤는데도 신난 눈으로 우와, 우와를 연발한 게 진짜 너무 웃겼다. 그런 소소한 이벤트 뒤에도 열심히 작업을 하다 마감 시간 직전에 또다시 체력적으로 힘들어져서 (그 때는 숙소까지 가는 건 포기하고) 잠시 강당에서 쪽잠을 자고 돌아왔다.
그렇게 슬슬 작업이 마무리되며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마감 1시간 전!"을 외치는 타이머가 대회 참여 인원 모두가 볼 수 있는 큰 스크린에 띄워졌다. 우리는 문제 없이 빌드만 뽑히면 프로젝트를 원활히 마무리할 수 있었고, 우리 모두가 내심 수상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빌드에서 문제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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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시연, 그리고 수상까지
빌드에서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있긴 하고, 기능도 잘 작용했는데 그냥 투명 박쥐가 되었다. 아무래도 위에 설명한대로 색 변화가 직관적으로 보여야 게임 이해가 쉬운 편이다보니 다소 크리티컬하다면 크리티컬한 버그였다. 투명 박쥐가 뭐람, 투명 드래곤도 아니고... 그래서 프로그래밍 분들이 당황하시며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셨지만 정말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버그였기에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버그인만큼 더더욱.
결국은 그 버전의 빌드를 제출하게 되었다. 사실 많이 아쉬웠다. 아무래도 그 전까지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되던만큼 맨 마지막에 어쩜 이런 큰 문제가 터지냐 싶어서 더더욱 절망적이었던 것 같고, 미완성품으로 보일까봐 더더욱 평가에서도 안 좋은 점수를 받을까 안타까웠다. 노력한 만큼, 그리고 그 이상의 협업으로 정말 좋은 성과를 만들었는데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행착오로 저평가 받을까봐 정말 아쉬웠다.
이런 탓에 빌드 제출 두세 시간 전부터는 임시 빌드를 뽑아봐야 이런 버그를 일찍 잡아낼 수 있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 다른 프로젝트에서 마일스톤 설정을 할 때에도 유용하게 써먹을 뼈저린 교훈.
이후엔 발표와 시연 시간이었다. 먼저 모든 팀의 5분 간 발표가 선행된 뒤, 게임 시연 시간이 이어졌다. 심사위원으로는 강원기 총괄 디렉터님, 김창섭 디렉터님, 권혁언 개발실장님 이렇게 세 분이 참여해주셨다. 놀라웠따... 발표에서도 팀장이 힘을 내서 열심히 우리 게임을 어필했다. 발표는 순조로웠고, 심사위원 분들의 반응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후에 있을 시연이 아무래도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말 아쉬운 건 사실이었지만 어쩌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던 문제기도 했고,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였으니 이 이상은 그저 흘러가는대로 물살에 몸을 맡기자는 생각을 했다.
시연 시간에는 김창섭 디렉터님이 남으셔서 개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플레이를 하셨다. 나도 우리 팀 팀장을 데려와 함께 디렉터님께 어필을 했다.
우리가 노력한 부분을 말씀 드리고, 특히 오류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드렸더니 그분께서 "아 원래 빌드가 다 그래요, 내가 할 땐 괜찮은데 남이 할 땐 오류 나고." 라며 말씀하셨다. 생각보다는 가볍게 넘어가주셔서 너무 안심이었고 다행이었다. 게임잼의 특성 상 상황을 이해해주신 것 같아 너무나도 감사했다.
디렉터님께서 아트에 대해서도 "2D 3D 같이 쓸 때 어울리게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아트 참 잘 만들었네요." 하셔서 매우 뿌듯했다. 아트 팀원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리스크를 감수한 데 대한 노고를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 게임을 플레이한 다른 참가자 분들도 다 "투명 박쥐인 건 별로 신경 안 쓰이는걸요? 다른 아트가 좋아서..." 라며 말씀해주셨는데... 모두에게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친 뒤에는 시상식을 위해 강당으로 갔다. 시상식 이전에 경품 추첨식이 있었는데, 우리 팀은 경품도 하나도 못 받아서 다들 해탈한 느낌으로 앉아있었다. 내가 농담으로 "우린 더 큰 걸 노리는 거죠!" 라며 수상을 노리자고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아무도 그게 진짜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다들 반응이 "그...쵸!^^" 였으니까.
그러고 나서 강원기 디렉터님이 직접 시상식을 진행하셨다. 시상 직전, 디렉터님께서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뽑은 1, 2, 3, 4 등과 여러분이 뽑은 1, 2, 3, 4등이 같았다고. (우리가 뽑은 1~2등은 우수상으로, 심사위원 측의 1~2등은 대상과 최우수상으로 수상되었다.) 즉 심사위원과 우리의 안목이 동일하단 거였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 속이 쓰렸다... 이렇게 됐을 때 수상을 못했다는 건 결국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난 솔직히 기획적으론 우리 팀이 1등을 할 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로웠고, 팀원들끼리 합도 잘 맞았기 때문에 너무 아쉬웠다. 물론 발표 때에 기획, 구현, 아트 컨셉까지 전부 매우 완성도 높게 만들어낸 팀이 있어서 그 팀이 암묵적으로 1등이 되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내심 높은 순위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더더욱 버그가 발생한 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3위, 4위 정도를 노려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두근두근 기다렸는데 강원기 디렉터가 우수상을 수상한 두 팀 모두 게임명에 '단풍'이 들어간다고 해서 절망했다. 우리 게임명은 '시럽 시럽 메이플 시럽'이니까... 그래서 그냥 수상이 안됐구나, 싶어서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2위, 1위를 기다렸다. 1위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예상한 그 팀일테니, 2위는 누구일까, 싶은 맘으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때 강원기 디렉터가 2위 팀의 게임명에는 '시럽'이란 말이 들어간다고 했다. 이 팀의 수상도 모두가 예상했을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솔직히 그때 잠깐 어, 설마 우리... 하긴 했지만, 바로 우리 게임의 버그가 떠올라 그 예상을 지웠다. 남은 팀 중 '시럽'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팀은 내가 예상한 1위 팀('시럽은 시럽'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저 그 팀이 2위면 1위 팀은 어디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럽시럽 메이플 시럽!"이란 말이 들려왔다.
"어??????????" 하는 높은 톤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퍼졌다.
나였다ㅋㅋㅋㅋㅋ 우리 팀도 전부 예상을 못했는지 어안이 벙벙해서 자리에서 어리둥절 일어났고, 전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갔다. 시상을 받을 때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상을 받고 다같이 내려가는데 정말 얼떨떨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도 그 간의 노력과 노고, 그리고 이 게임의 대단함을 모두가 인정해주는 거구나, 하는 마음으로 너무 뿌듯해서 거의 춤을 추며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모든 일정을 마쳤다. 정말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팀원들과 신이 나서 이야기하며 우리 출시도 하자, 나중에 회식도 하자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집까지 갈 때엔 프로그래밍 팀원 한 분과 신이 나서 대화를 하며 갔다. 너무너무 행복했다... 고비가 있었지만, 전부 다 해결도 됐다! 그 날 아침 점심 공복이었는데도 하나도 배고프지 않았다. 정말이지 행복한 날이었다.
6
느끼고 배운 것
전반적으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여정을 마치고 나서 곰곰이 돌이켜봤다. 이번으로 나에게는 세번째 경험이 되는 게임잼을 성료하고 어째서 이번 게임잼에서는 이토록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내린 결론은, 게임잼의 의의는 '도전'이라는 것.
아마 심사위원 분들도 이 부분에 많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게임잼은 일반적인 게임 개발 프로세스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빡센 크런치를 통해 빠르게 결과물을 내는 것이 중요한만큼, 게임의 플레이 타임이 짧을 수밖에 없다. 플레이 타임이 짧은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와 이걸 어떻게 생각했지?" 또는 "와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별개로 "와ㅋㅋㅋ 이걸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한거지?"라는 느낌의 어그로성, 개그성 임팩트도 존재하지만 이건 수준이 아주 높은 건 아니므로 생략. 사실 요것도 해본 적이 있다. 요건 나중에 따로 또 적을 예정.)
일반적이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어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루트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과정, 둘 모두 도전이라는 키워드에서 비롯된다. 평소라면 이런저런 현실적인 제약을 따져 관둘만한 방안을 게임잼에서는 게임잼이라는 핑계로 해보는 것에 가깝다. 미친 척 3일만 한번 쏟아보지!라는 마인드. 정말 그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디 게임, 또는 스토리, 텍스트 위주의 게임은 안타깝지만 게임잼에서는 그 임팩트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움을 제공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참여한 '시럽시럽'이 성공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시스템의 참신함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피그잼에서 우리 팀 기획자의 게임 기획을 봤을 때부터 그랬다. 헬테이커와 네크로댄서와 같은 느낌으로 분명 익숙하긴 한데 그것과는 또 다르게, 본 적은 없는 게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도 처음부터 그 기획에 끌렸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개발에 있어 아주 많은 품이 드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나 인력 등의 다양한 제약 속에서 가능하되 개중 조금이나마 더 참신함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평소에도 그 기획자의 기획 능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통해 더욱 포텐셜이 큰 사람이라는 걸 느낄 정도였다. 게임DB가 넓고 깊을 뿐더러 그 안에서의 참신함을 찾을 눈이 있으며, 이를 통해 게임 규칙을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는 그 기반이 멋졌다. 이런 부분이 특출났던만큼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어도 그 기획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나도 아트 쪽에서는 나름의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 가산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팀 빌딩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트에도 쉬운 길(2D 키프레임 애니메이션 팀원)과 어려운 길(3D맵&애니메이션 팀원)이라는 두 선택지가 존재했다.
오히려 오랜 기간 동안 개발해야 하는 게임이었다면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게임잼이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후자를 선택했고, 그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되었다. 여기에 2D와 3D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세피아톤+포인트컬러의 방향으로 아트 컨셉을 명확하게 잡은 것도 큰 시너지를 일으켰다.
스토리나 캐릭터 컨셉에 있어서도 직관적이면서도 전달이 쉽고 짧은 스토리를 선택한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물론 스토리를 강조할만한 장르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 스토리를 없애는 것보다는 딱 '어그로'만 끌어보자는 생각으로 '붉은 색', '열심히 일도 하고 몬스터도 퇴치해야 하는 주인공'에 집중해 드워프, 드래곤, 단풍, 메이플 시럽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단 4장의 컷씬(그마저도 재활용 컷씬이 3장)과 7~8줄 이내의 스크립트로 내용을 모두 전달했다. 몬스터도 직관적으로 설명된 것 같다. 이외엔 설명이 부족해도 그렇구나~ 하는 느낌, 또는 최소한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의 느낌.
물론 이렇게 말해도 함께 한 팀원들의 능력이 좋은 게 크다. 내가 제안한 방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준 기획 팀장, 내가 할 수 없는 3D 아트 쪽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만들어준 아트 팀원, 툰 렌더링은 처음 시도해보는데도 반영하기 위해 많이 노력해준 프로그래밍 팀원들 덕이다. 이런 팀을 만난게 천운이라고 여겨진다. 무한히 감사.
7
출시?
어쩌다보니 출시도 했다. 트레일러도 있고, 스토브 인디에 무료로 올라왔다. 많관부.
https://store.onstove.com/ko/games/2886
출시 이야기는 수상 직후부터 하자고 이야기했어서 원활하게 진행됐다. 규모를 크게 확장할 생각은 아니고, 기존에 있던 버그들만 고치는 수준으로 다듬어서 무료로 출시해보자~ 하는 느낌. 모두들 본업이 있다보니 여유롭게 수정을 거친 후에 12월까지 빌드가 나오고, 12월 31일 (정확히는 검수를 거쳐 1월 6일 쯤) 출시를 마쳤다.
애초에 우리의 성과물 기록!의 목적이 크고, 유저의 피드백이 오고 이를 통해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의 마인드였기에 이렇게 게임잼으로 출시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게 그저 감사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달린 하나의 리뷰도 너무 감사할 따름. 플레이타임도 15분 정도이다보니 가볍게 플레이해보실 분은 추천.
8
여담
여담... 뭘 쓰려고 했는지 까먹었다.
아마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는 요지의 내용, 그리고 어쨌든 나도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된 것이지, 다른 게임잼에서의 필승 공략법, 하다못해 재밌넥 하나에 있어서도 필승 공략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 디렉터님께서 IGC 강연 당시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에 대한 유저의 반응은 운칠기삼이다. 하지만 그 '기삼'의 부분에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운이 아무리 좋아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 끊임 없이 정진하고, 발전할 것.
천운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홧팅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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