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게임 제작의 발자국

[S] 프리랜서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로 일해보기

련잉엥용 2024. 2. 5. 16:26

현재 모 게임의 시나리오 라이터로 일하는 중이다.

이 회사의 게임이 국내 인디게임인만큼  장르부터가 '이 게임인가?' 하고 특정하기 쉬운지라... 자세한 서술은 생략. 어차피 업무 내용보다는 그냥 이를 통해 내가 성장한 바를 적고자 하는 목적이 크므로 최대한 회사 관련 사항은 뭉뚱그려 서술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현재 재택근무 계약직으로 시나리오 쪽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연출 시스템도 어느 정도 추가 기획을 하고, 신규 컷씬도 콘티를 결정하는 등 시나리오 기획 쪽 일도 겸하고 있다.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서 계약 시에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중요한 일을 맡게 되어 얼떨떨하지만, 그만큼 큰 책임감과 의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중이다. 평소에 안하던 짓도 곁들여가며 최대한 열심히 하는 중.

솔직히 털어놓자면 이 일을 하게 된 초기 목적은 돈과 사회 경험이었다. 일반적인 알바를 하기엔 그 시간에 게임 기획 공부나 게임 프로젝트 작업을 한 시간 더할텐데... 하는 생각이 컸다. 알바하기엔 시간이 아깝고, 그렇다고 그런 경험을 안 하고 곧바로 취업을 하기엔 사회 경험을 어느 정도 하고 들어가면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사회초년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더군다나 생활에서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거나, 생활이 어렵다거나 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부수적인 용돈 수준의 벌이만 있으면 좋겠다 싶은 찰나였다. 그럴 때 내가 좋아하는 게임 제작, 그것도 내가 가고자 하는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냉큼 지원하게 된 것이었다.

지원 과정에서의 썰도 굉장히 재밌는데, 아무래도 회사가 특정될 수 있으므로 생략.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난 내가 떨어질 줄 알았다. 그것도 내가 오타쿠력이 부족해서...ㅋㅋㅋㅋㅋ 물론 채용 이후 이것이 오해라는 건 알게 됐지만.

아무튼,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작업 프로세스가 생기고, 나도 조금씩 적응하다보니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생각보다도 너무 좋은 경험이고, 정말 좋은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새삼스레 그 이유들을 정리해본다.

 


 

한 줄 요약: 일하는 게 너무 즐겁다!!!

 

1. 게임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배울 것이 많다.

인디 게임이기 때문에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PC/모바일 멀티플랫폼에 전세계 서비스 중이며, MAU가 500만 이상.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얼떨떨하다. 해외 서비스 중인 게임, 그 안의 메인 스토리를 작업하게 되는 만큼 그 책임감이 막중하다. 반드시 잘 써내야 한다. 그래서도 연출 쪽 기획에 어느 정도 손을 댄 것도 있다. 기존의 연출로는 전달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어 여러 게임 연출을 공부하고 접해보며 지금 당장 개발 비용이 크지 않더라도 큰 효과가 낼 수 있는 사항들을 접목해보며 시나리오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신규 연출 기획서를 전달드렸다. 그 과정이 너무 즐겁고 뿌듯하고 유익했다.

확실히 스터디 형식으로 인디 게임을 개발했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작업을 받아들이는 팀원들의 태도도 다를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해 확인을 받는 과정에서도 서비스로써의 게임을 고려했을 때 놓친 부분도 조금 있었다. 타 직군에서의 작업으로 인해 나의 작업이 대폭 수정되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얻어가는 것이 정말 많았다. 조금 더 현실을 알게 되는 느낌이랄까.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개발 기한.

확실히 (내 기준에서) 큰 규모의 게임에서 큰 규모의 일을 맡다보니 배우는 것이 수도 없다. 내가 게임 시나리오쪽 일을 하며 포트폴리오로 작업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도 전부 해보는 중이다. 가령 그간 없던 게임 세계관/스토리/캐릭터 위키를 내가 A부터 Z까지 작성한다거나. 그 과정에서 설정에 살을 붙여나간다거나, 안 맞는 설정의 경우 문의 후에 수정을 하는 등의 과정이 즐거웠다. 확실히 난 이게 적성에 맞구나... 싶었다. 위키를 작성해보며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각화하기엔 그 편이 제일 좋을 듯 해서... 일단 이 부분은 당장의 마감 이후에 해볼 것을 고려 중.

아무튼, 규모가 너무 커서 손대기에 어렵지만 그렇다고 경험을 안해보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해보자니 어딘가 팀에 소속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게임 기획 경험도 해보면서,  정말 즐겁게 배워나가는 중이다. 사실상 지금 이 글이 어느 정도 포스트모템 역할을 하긴 하지만, 내 시나리오가 진정으로 유저들에게 공개된 이후에는 분명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는 진짜 제대로 내가 성장한 바를 자세히 돌이켜보며 포스트모템을 써보고 싶다. 지금은 까먹지 않도록 부분적인 기록을 해두는 것에 가까울 듯.

 

2. 글 쓰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만, 그만큼 재밌다.

장기간 연재 경험은 없던 나인만큼 가장 걱정하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꾸준히 글을 많이 쓰는 경험이었다. 쓴다면 쓸 수 있다지만, 그럼에도 그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래서 나의 성향을 철저히 분석해서 필승법을 만들었다.

바로바로 철저한 계획 세우기. 나는 MBTI에서 J가 88%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정한 계획은 반드시 지킨다. 애초에 그렇지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이니까. 그러므로 시나리오의 경우에도 하루 날을 잡아서 모든 시나리오 내용을 세세하게 정해두었다. 이 스테이지에서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고, 저 스테이지에서는 다른 스테이지의 복선을 깔고... 그렇게 철저한 내용 구성을 한 뒤에 컨펌을 받고 지금은 대사를 주루룩 쓰고 있다. 여기에 어느 내용이 들어가고, 어느 내용은 아직인지 먼저 정해두니 정말 쓰기만 하면 된다! 걱정할 부분이 없으므로 글이 막히는 일도 없다. 적절한 단어를 찾기만 하면 되는 느낌. 그건 내가 잘 하는 거라 쉽다. 그리고 강제 마감(?)의 힘은 강하다. 데드라인이 있다보니 그 압박이 좋은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마감이 닥쳐와서 파바박 쓰면 (J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인간이라 언제 얼만큼을 쓸지까지도 계획을 세웠다. 절대 뒤처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분량을 다 썼을 때에 뿌듯하고 기쁘다.

때문에 요즘은 매일매일 대사 스크립트 12000자 가량을 쓰고 있다. 웹소설 2편 분량이다. 그런데도 퀄리티가 꽤 나온다. 2~3일에 한번 전체 내용을 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인데 사소한 문장력이나 가독성을 위한 변동, 말투 같은 것만 고치면 될 뿐 생각보다 매끄럽게 읽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이 일이 내게 적성임을 느낀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 재미를 지속해야한다는 것. 글 쓰기 싫어지면 무지 싫어지는 사람이라 이걸 꼭 막고 싶다.

그래서도 대안책으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것도 있다. 대안책이 글이라고? 싶을 수도 있지만... 이건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농담과 비슷하다. 마감하며 그림 그리기 싫다 하다가도 쉴 때가 되면 그 때도 취미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한다는... 그런 성향인 것이다... 그냥 글 쓰는 게 재밌으니까 블로그 글로 좀 리프레쉬를 한다는 의미. 그마저도 질린다면 뇌를 비우며 콘텐츠DB 구축을 해야지.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감상한다는 소리다.

그 외에 글에서의 어려움이 있다면야 기존 스토리와 연결을 잘 해나가는 것. 이미 있는 스토리를 연장하고 수정하는 것은 언제나와 같이 어렵다. 이 부분은 창작자로써도 계속 고민해나갈 부분이다. 여러 작문 서적을 참고해나가며 매끄러운 작문법을 계속 배워나가는 중이다. 이것도 포스트모템에서 많이 써봐야 할 부분일듯.

 

3. 일하며 덕후력 뽐내기가 가능하다.

회사 미팅에서 "이 캐릭터와 저 캐릭터가 10년 뒤에 결혼할까요?" "원래 사람들은 서로 싫어하는 두 캐릭터가 나중에 서로 좋아하게 되는 걸 좋아해요"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세계였다. 물론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라면 어디든 안그러겠냐마는 그래도 처음 겪어보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게 너무나도 즐거웠고, 이 부분에서도 다시 한번 이쪽 일이 내 적성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원래도 덕후 심리 분석을 재밌어한다. 내가 어느 정도 오타쿠였던 적이 있었던 것도 있고. 지금은 덕질하는 게 없으니 그냥 조금 먼 거리에서 친구들을 지켜보다보면 흔히 말하는 '소나무 취향'이라든지, '클리셰'라든지 하는 부분을 짚어내는 것이 정말 재밌다. 가령 제 취향이 은근 까다롭다며 내 취향이 뭔지 나도 몰라!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사실 넌 흑발 적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은은하게 미쳐버린 캐릭터가 취향인 게 아닐까'라고 이야기해준다던가, 나처럼 북부대공st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에게 '너 마블 버키도 좋아할 듯'라고 제안해준다거나. (난 마블 버키 좋아했다.)

아무튼 이런 성향의 나이다보니 기존의 스토리, 기존의 캐릭터들에게 추가 설정을 부여해보고, 이런 설정을 반영해 앞으로의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구축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즐거웠고, 그래서 이것을 다른 분들께 설득시키는 일이 굉장히 재밌었다. 가령 이 캐릭터는 이러한 부분이 원동력이 되므로 A하게 행동할 것이며, B하게 행동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든지, 유저들은 저 캐릭터를 C한 부분 때문에 좋아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D를 넣으면 그 수요가 겹치는 팬층이 많으므로 시너지가 날 것이라든지... 서브컬쳐에서는 근거가 되기에 정확한 지표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조금 흠이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예시 캐릭터를 들어가며 설명드릴 수 있어 모두 잘 이해해주셨다. 조금 더 전문성 있는 기획자가 되려면 그 지표를 잘 찾아내는 것도 관건일 것 같다. 가령 원신 캐릭터 출시 시기별 판매량이나 커뮤니티 참조? 아직 이 부분은 고민하고 배워나가야 할 부분.

실제로 회사 면접 중에도 나는 우마무스메 고루시 캐릭터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고찰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이다. 그런게 정말 재밌다. 어느 정도 수요가 있다고 하기는 해도 흔히 생각하는 대중적인 취향의 캐릭터까지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데는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원에서도 이 블로그의 분석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의) 분석 글을 연재해보려고 계획샜다. 고루시도 그 중 하나의 글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오늘은 여기까지 써봐야지. 포스트모템 글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쓸 것이다. 또 글이 파바박 써지고 싶을 때 간간이 이렇게 일지를 써보려 한다. 지금 하고 있는 계약직 외에도 많은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라서... (몸이 3개는 있으면 좋겠다. 2개도 이젠 부족해.)

아무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