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덕질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

[콘텐츠] <파묘> 감독님 정말 진심이시군요...

련잉엥용 2024. 4. 4. 13:02

요즘 핫한 파묘!

리뷰가 정말 많겠지만 은근 호불호도 많이 갈리고 다양한 평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극도로 좋아하는 사람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극명히 나뉘었다. 그리고 역시 각자 좋아하는 포인트, 싫어하는 포인트도 다 비슷했기 때문에 그 판단이 어째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알아내는 과정도 정말 재미있었다.

오컬트 영화로는 최초로 천만을 넘겼다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며 더더욱 주목받는 지금, 내가 분석한 파묘를 통해 장재현 감독님의 시선을 유추해보고, 어째서 대중의 평이 갈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극히 창작자/덕후적 관점에서 본 파묘.

팬아트로 만들어진 스페셜 포스터라는데... 좋다.

 

오늘도 거대한 <파묘> 스포일러 주의!

 


 

1. 오컬트 영화가 이래도 돼?

 

파묘는... 정통 오컬트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주인공이 죽지 않는 오컬트 영화는 드물다. 심지어 파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그런만큼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순식간에 공포에서 안도로 해소되고, 그 여운은 남지 않고 깔끔하게 끝난다. 지나치게 깔끔하다. 공포의 여운을 남기고 곱씹게 만들지 못하는 오컬트는 관객 어필에는 실패한 오컬트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오컬트의 팬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공포감에 빠져들곤 한다. 혼란스러움,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을 즐기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렇지만 갑자기 공포감을 느끼던 이들을 현실로 끄집어 낸 후, 사실 그래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로 끝낸다면... 당연하게도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불쾌함을 느끼는 이들도 이해된다. 오컬트라며 영화를 홍보하던 바에 따라 공포의 여운에 남고자 하던 명확한 목적이 중반 가량부터 단숨에 취소되고, 급커브를 하며 경로를 재탐색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이들 입장에선 홍보 사기다.

중반까지는 분명 오컬트 영화였으니...

하다 못해 맨 마지막에 죽지 않은 오니가 남아있는 것으로 끝이 나거나, 상덕이 죽고 모두가 파멸해야 이들을 그나마 붙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냥 오니가 나오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기도 한다. 무형의 공포를 느끼던 것이 실체화되고, 대적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을 때에는 분명 파훼법이 생기니 혼란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오니는 무형으로 남았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분명 어떠 그러나 어떻게 했어도 파묘는 오컬트 팬들을 위한 영화로는 여전히 부족했을 것이다.

오컬트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오컬트에 대한 모독이라 느낄 만 하다. 나만 알고 나만 좋아하던 마니악한 맛, 가령 마라맛을 원래부터 좋아하다가 각종 마라 소스 음식이 레토르트화 되어서 나오고 그 이름도 박아뒀길래 드디어 대중에게도 마라 붐이 오나 하면서 먹어보니 그 맛이 아니니까. 맹맹하기만 하고, 뜬금없는 설탕맛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걸 처음 먹어본 대중의 입장에서는 익숙하게 새롭다.

요즘의 대중은 여운이 남는,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는 영화보다 깔끔하고 뇌 빼고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한다. "요오즘 것들" 느낌의 꼰대식 발언이 아니다. 나부터가 그러니까. 당장 넓게 보면 웹툰, 웹소설, 곱씹어보고 찜찜함을 남기는 영화보다는 깔끔한 참교육, 회빙환 식의 콘텐츠가 즐비하다. 현 시대 사람들의 스트레스도 한 몫 하고, 숏폼 콘텐츠가 대두되는 것 또한 한 몫 한다. 나쁜 변화라기보다는 그냥 필연적인 변화다. 그렇게 이에 발맞추면서도 오컬트성을 가져간 영화가 바로 파묘다.

각종 마라맛 음식이 나오고, 유행과 인기가 커지는 동안 마라 미식가는 이를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고뇌한다. 그러나 이런 유행이 지속되면 결국 세상 모든 마라가 대중의 입맛에 맞게 중화될 것이라는 생각에 싫어하게 된다. 그냥 두다보면 세상엔 이따금 마라맛 탕후루와 같은 이상한 혼종까지 나오곤 하니까. 파묘도 나름대로 비슷한 이치다. 마니악한 요소와 대중성을 적절히 섞었다. 마니아들은 이걸 싫어하지만, 대중은 이에 환호한다. 특히 장 감독님은 이전부터 오컬트 영화를 주구장창 파왔던만큼 평이 갈릴 수 밖에 없다.

당연하다, 감독님의 메인 의도는 훌륭한 오컬트 영화가 아니었으니까.

 


 

2. 그럼 무슨 영화인가?

 

애국 영화냐고? 그런 설명으론 조금 부족하다.

내가 본 파묘는... 글쎄. 그런 엄청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설정에 과몰입한 영화다. 무슨 의미냐 하면, 모든 게 감독님 취향으로 만들어졌다. 캐릭터와 배경 설정에서 "맛있는" 부분이 많고, 이걸 강조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거다. 다른 말로 하자면 덕후스러운 영화다. 서사도, 모에도 다 잡은 영화. 하지만 그걸 무엇보다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그 니즈를 잘 맞춘 영화다. 보면서 못해도 800만은 하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감독 취향을 듬뿍 넣은 대기업 맛 오컬트 영화.

왜 장 감독님이 이러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의 그 의중까지 알 수는 없지만, 전작인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을 보았을 때도 똑같이 느낀 바가 있다. 당장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만 봐도 덕후가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캐릭터이다. 하다못해 검은 사제들에서 종이 울리는 효과나 후광이 전혀 없었다는게 충격적이란 후기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장 감독님은 자신의 작품 속 설정과 세계관을 대단히 좋아하고, 이것을 우리에게도 맛보게끔 하고 싶어하신다. 특히 종교적인 대비감을 굉장히 잘 활용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다만, 어딘가 묘하게 파묘는 그런 면모가 더하다고 생각했다.

2차 창작을 할 만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그걸 느낀 첫번째 포인트는 바로 대살굿 장면이다. 모두가 명장면이라고 꼽는 이 씬에서의 연출과 그 긴장감은 분명 많은 공을 들여 나온 것이 틀림 없다. 그 과정에서 실제 무당의 도움을 얻어 자문을 얻는 등 고증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이 느껴졌다. 대살굿을 강조한 것은 결국 한국 무속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느껴졌고, 이건 이전의 사바하부터 그래왔던 것 같다.

나부터도 한국 전통 요소에 빠진 창작자이기에 지금까지 참여한 6개의 게임 프로젝트 중에서 5개가 한국풍이 가미된 게임이다. (징하다.) 뭔가 특별함을 가미할 때에 넣는 특별한 소스가 한국풍인 셈이다. 장 감독님도 종교적 요소를 그런 방식으로 활용하는 듯 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내가 한국풍에 환장하는 것처럼 감독님은 종교적 요소에 환장하는 것이다.

그치만 좋은걸...

그와 동시에 대살굿 직전, 봉길이 화림의 운동화 끈을 매주는 장면에서 나는 감독님이 엄청난 덕후임을 느꼈다. 이는 단순한 재미 요소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부터 덕후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했던 대비감이 정말 잘 묻어나는 장면이다. 전통과 현대의 대비, 봉길의 위치와 화림의 위치에 대한 대비, 긴장감 넘치는 상황 직전의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 등 여러 대비감이 어우러지며 왜인지 모르게 재밌다는 것을 넘어서서 기억에 명확히 남는다.

뿐만 아니라 플롯 전체로 대한 독립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했다는 면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은 자연스레 친일파와 독립 운동, 그리고 해방 이후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분명 이는 엄청난 고양감을 불러온다. 하지만 감히 이야기해보자면... 감독님께서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독립 운동이라는 요소를 사용한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감독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런 고양감을 심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흔히  사람들이 신파 영화, 국뽕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너무 그 의도가 명백히 보여서, 그런데도 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집어넣어서, 이다. 뻔히 보이는 수를 쓴다는 거다. 그러나 파묘는 그런 국뽕 영화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감히 말하자면, 나는 감독님의 의도와 방점은 독립 운동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이 세계관에 심취하는 정도를 높이려 함이 조금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분명 엄청난 애국심과 고양감이라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덕후성, 상징성을 위한 도구라는 면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게 느껴지는 두번째 포인트가 바로 캐릭터다.

 


 

3. 감독님 파묘 캐들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감독님은 캐릭터의 활용과 그 관계성에도 많은 애정을 쏟는다.

파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당연히 김상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김상덕이 오니를 무찔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각, 그의 행동, 그의 의지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영근과 화림, 봉길 또한 모두가 매력적이고 비중 있게 다뤄지는 캐릭터이지만 이들은 모두 사건을 이끌고 나가지는 못한다. 영근은 상덕의 조력자이다. 화림의 경우 상덕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그보다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해결을 하고,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것에 주된 힘을 쏟는다. 봉길은 그런 화림을 돕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포스터. 사방신처럼 각각의 방향을 바라본다는 게 재밌었다. 의도한 건 아니고 얻어걸렸다는데 너무 부럽다.

캐릭터 각각의 대비감도 굉장하다. 상덕은 뚜렷하지는 않으나, 후반부의 "아 맞다 딸래미 결혼식..."이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매력에 홀딱 빠지게 한다. 진짜 파묘 본 날은 하루종일 저 대사만 떠올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진지하다가도 얼굴에 축경을 그리고 헤헤 웃는 모습이라든지, 최민식 배우 특유의 가벼운 농조가 어우러져 김상덕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올곧은 마음가짐과 풍수가로서의 신념, 사명을 가지고 임하는 태도는 주인공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영근은 기독교라는 점이 특히나 그러하다. 풍수 보는 사람과 함께 다니고 대통령 염까지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장의사인 그는 당연하게도 유교와 밀접하지만 정작 진짜로 믿는 종교는 기독교이다. 그러면서 마치 그가 관 뚜껑을 열 것이라는 암시를 잔뜩 주고서는 정작 여는 쪽은 병원장이라는 점에서도 다시 한번 그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진다. 어느 한 부분은 악할 법한 캐릭터임에도 그런 부분을 배제했다.

화림과 봉길은 사실 꼽자면 무수히 많은 대비 포인트를 가지고 있어서 생략하기로 한다. 이 둘은 정말이지 2차 창작을 맘껏 하라는듯이 오타쿠의 장을 만들었구나, 싶다. 그게 감독의 메인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봉길이 죽지 않고, 두세 차례 빙의가 되는 모습에서 그 면모가 도드라진다. 봉길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이들 중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컬트 영화의 특징 상 조력자와 파트너는 필연히 죽기 마련이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래야만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고 주인공의 혼란에 이입하기 좋으니까. 그러나 최소한 봉길이 배를 찔릴 때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아무도 죽지 않았다. 모두가 잘 산다. 후유증이야 있다고 하지만 너무 행복해보인다. 찜찜하지 않다. 불안하지 않다.

그 이유에 있어서 누군가는 이들이 각각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가령 봉길은 한반도라는 땅 그 자체를 암시하기에 죽을 수 없고, 척추 부근을 다친 것이라는 해석. 맞는 말이다. 그런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초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것만으로 이들의 엔딩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듯 하다. 그냥 이건... 덕후 창작자의 마음가짐이라는 해석밖에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며 감독님에 대해 "이 감독님 상덕, 영근, 화림, 봉길 다 빠짐 없이 정말 아끼고 좋아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지만 결국 감독님이 이 네 캐릭터를 죽이기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니까... 이걸로 2차 창작도 많이 하고 이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은데 캐릭터들이 죽으면 안되니까... 같은 느낌. 이 캐릭터들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섣불리 죽이기 아깝기도 하고, 그냥 어딘가 '내 새끼'가 죽는 게 보기 싫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살리는 편이 더 재밌고, 마음도 덜 아프니까.

감독님도 이렇게 되는 게 아닐까


 

4. 파묘는 성공작인가?

 

결론, 파묘는 엄청난 의미, 엄청난 뜻보다는 감독님의 덕후적 취향 베이스에 대중 취향 한 스푼을 담으려고 한 영화로 보인다.

전개와 연출을 황당하게 느낄 오컬트 팬들에게 있어서는 몰라도 파묘는 분명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나는 그런 면에서 장 감독님이 어느 수까지 내다보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캐릭터와 설정에 대한 애정이 나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낀만큼, 이런 영화에 대한 시도 자체를 한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상업예술은 상업에 방점이 찍혀있다. 마니아들에게는 모독일지 몰라도 이런 레토르트형 퓨전 음식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파묘는 그 시도가 굉장히 잘 먹혀들어갔다. 자신의 취향을 밀고 나가서 천만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한편 나는 명리학으로 졸작 만드려고 작년 12월부터 구상하던 사람이라 지금 누가 이거 파묘 따라해서 오행 따왔죠! 라고 할까봐 쫄린다. 흑흑.

창작자는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창작자로서는 분명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나 또한 대중의 반응과 밀접한 상업 예술에 뛰어들어야 하는만큼 욕을 먹을 용기와 그를 통한 새로운 도전 정신은 배워야만 한다.  심지어는 적절한 홍보 사기마저도. 어쨌든 이들의 반응이 바이럴 마케팅이 되지 않았는가?

언젠가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그리고 파묘의 세계관이 통합될 거라는 말이 있던데, 그것까지는 대중보다는 덕후들의 영역이라 성공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완성된 여러 세계와 여러 주인공을 하나로 합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단 말이다. 그렇지만 성공한다면 또다른 MCU와 같은 강력한 IP가 만들어지는 것이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국 전통을 강조한 IP가 어서 빨리 널리 퍼졌으면... 하는 한 명의 덕후인만큼, 차기작 소식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