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덕질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

[콘텐츠] 취향 분석서: 내가 사랑했던 모든 캐릭터들에게

련잉엥용 2024. 3. 2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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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고, 깊다면 깊고, 얕다면 얕은 덕질 생활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접해도 보고 만들어도 봤다.

그런 내게 있어서 많은 취향이 스쳐지나갔지만, 오늘은 그게 지금 내 창작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고찰해보는 정말 지극히 오타쿠적인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정말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따악 첫 글만 이렇게 작성을 해본 뒤에 이후 글에서는 한 캐릭터에 집중해 왜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특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고로 이 얘긴 일기에나 써! 라고 태클 걸릴만한 글인거다... 그치만 이곳이 내 일기장인 거니까... 여기가 내 블로그니까... 이해해달라... 그치만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냥 흐린 눈 하고 넘어가자.

덕질은 비교대조군을 찾기가 어려운 편이다. 커뮤니티마다의 성향이 많이 다르기도 할 뿐더러 나는 나 혼자만의 덕질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주변에 나름 덕질 좀 해봤다! 하는 친구들을 둔만큼 이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 그렇게 캐릭터나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게 관심 있어서 애초에 이쪽 분야의 진로를 생각했으니까. 물론 그래도 덕질이라는 분야 자체가 정형화되고 공식화된 분석이 나오기 어렵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이곳에 쓰일 내용은 지극히 주관적인 분석이라는 것이다. 감안할 것!

 


 

1. 초창기: 뿌리 깊은 역사, 그 근본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까? 음...

태초에 청소년 판타지가 있었다.

나는 그런 책들을 좋아했다. 모두가 한번 쯤은 들어봤을 해리 포터, 퍼시 잭슨, 타라 덩컨과 같은... 엄청난 비밀을 가진 청소년 주인공이 이런저런 역경을 헤쳐나가며 결국은 승리하는 내용의 책들. 이 외에도 기억나는 것만 황금 나침반, 레인저스, 율리시스 무어, 케인 연대기, 고양이 전사들, 헝거 게임, 메이즈 러너, 테메레르, 트와일라잇, 39 클루스 등등... 수도 없는 청소년 판타지 소설 시리즈들이 나와 함께했다. (이 목록을 보고 와 그립다! 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화영화는 전혀 보지 않던 내게 매주 한번 도서관을 가는 건 내겐 거의 놀러 가는 것과 같이 즐거웠다. 내 어린 시절 하루 일과엔 독서가 큰 지분을 차지했고, 난 언제나 이 주인공들에 이입하며 함께 판타지 세계를 헤쳐나갔다. 매일 밤, 내가 만약 그 세계관에 가게 된다면 난 무슨 마법을 쓰고 싶어! 나는 어떤 데미갓이 될래! 내 패밀리어는 어떤 동물이면 좋겠어! 같은 생각을 했다. 어느샌가 난 그 안에 새로운 캐릭터로의 나를 상상하고, 그 안의 새로운 동료들이나 새로운 역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때부터 창작자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설들은 창작욕의 시초 외에도 내 삶을 꽤나 많이 바꿨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 영어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시리즈들은 해리 포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애초에 해리 포터의 성공으로 그 비슷한 책들이 우후죽순 나올 시기여서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다음 주 이 시간에 봐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문제는 다음 권이 찾아오는 게 다음 주인지, 다음 달인지, 다음 해인지, 그 다음 해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지만.

외국에서 신작 도서가 출간되고, 이것이 번역되어 한국에 정발된 뒤에 그것이 나의 구립 도서관까지 오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래서 또다른 청소년 소설 시리즈에 빠져들기도 하고, 다른 책들도 읽어가며 내 애타는 맘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는 않았다. 마침내 우리 도서관에 있는 청소년 소설이란 소설은 다 읽었을 때, 나는 모든 시리즈물의 마지막에 대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라는 의문만 수십 개 가진 채 남겨졌다.

책장에 이런 시리즈 단위로 수십 시리즈가 꽂혀있었다. 전부 영어로.

그래서 난 결국 조금이나마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영어 원서를 사서 읽게 되었다. 정말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는데, 그냥 무작정 읽고 또 읽다보니 이해되지 않던 내용이 대강 추측이 되고, 각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도 알게 되었다. 영어 공부를 할 때에도 행간을 읽으란 말을 하는데, 그걸 스스로 단련을 한 셈. 아무튼, 그 덕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를 조금이나마 더 빨리 알기도 했고, 영어 실력도 또래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내 '덕력'이 생성되었다.

 


 

2. 성장기: 축적되는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2차 창작

 

어느샌가 청소년 소설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아마 너무 많이 보기도 했고, 슬슬 중2병이 올 시기여서도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남들과는 달라!라는 맘으로 뻔한 플롯을 벗어나고 싶었고, 비슷비슷한 먼치킨 주인공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겐 지금 생각해도 다소 어이 없는 덕질의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닥터 후'. 사실 닥터 후 자체는 워낙 여기저기 유명하기도 하고, 많은 이들의 덕질의 근본이 되는 드라마다보니 그 자체론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내게 이게 어이가 없는 이유는 이걸 당시 내 담임 선생님께서 점심 시간마다 틀어주셔서 강제 시청해야만 했다는 것...ㅋㅋㅋㅋㅋ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반 학생들 다같이 무서워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선생님... 편견이겠지만 첫 인상으론 보기엔 닥터후 같은 건 전혀 모르실 법한 분인데 애들한테 꾸준히 닥터후를 전파하셨다. 덕분에 나는 훌륭한 오타쿠로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지금 봐도 천재적인 아이디어. 그래서 뇌절의 뇌절로까지 패러디된다. 하지만 소재가 너무 좋은걸.

닥터 후는 지금 봐도 재밌다. 뜯어놓고 보면 유치한 설정들 투성이지만, 아무래도 장수를 하고 인기가 있는 데엔 이유가 있다. 닥터 후는 클리셰 활용을 정말... 정말 잘 한다. 그 땐 그냥 틀어주니 봤다지만, 결국 닥터 후 때문에 형성된 취향도 꽤 된다. 아마도 이게 내가 사연 있는 남자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첫 이유가 아닐까... 이 때문에 카렌 길런이나 데이비드 테넌트같은 멋진 배우들도 알게 되고, 마크 게이티스나 맷 스미스 같이 다른 드라마에서도 종종 보는 얼굴들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아직도 난 데이비드 테넌트를 좋아하고, 그 때문에 멋진 징조들도 잘 봤다.

이 외에도 반지의 제왕, 그리고 호빗 시리즈를 본 것도 어린 오타쿠인 내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내 첫 '최애'가 탄생했던 것이다. 물론 난 닥터도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든 것이지, 내게 있어 큰 임팩트와 함께 "앞으로 내가 네 망상을 독차지할거다"하며 다가온 건 이쪽이 더 했다. 그게 누구냐면... 레골라스가 아니다. 대부분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시리즈에서 최애가 있다 하면 대부분 레골라스겠거니... 하지만... 난 레골라스 아빠, 스란두일을 좋아했다. 아마 내가 장발 남자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할 거다. 그리고 이 캐릭터도 물론 절절한 사연이 있다. 그래서 더 좋다. 우히히...

스란두일 배우도 너무 좋아해서 작품 정주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저 얼굴, 저 스타일링부터 너무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설정도 하나하나 주절주절 읊으며 이 부분이 특히 좋아요... 하고 싶지만 좀 변태같 보기 흉할까봐 생략한다.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소품 팀에서 만든 나무 왕관은 정말 신의 한 수였고, 편집 팀에서 스란두일의 하얀 갑옷 씬을 잘라낸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아무튼, 스란두일과 그 배우 리 페이스를 계기로 영미 영화나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 나는 대부분의 미드 영드 덕후들이 간 길을 똑같이 거쳐왔다. 셜록, 한니발부터 시작해 웬만한건 최소한 그 배우가 누군지 알고는 있다. 당연히 마블도 거쳤고, 그 안에선 또 다르게 사연이 절절한 장발미남 버키를 좋아했다. 허허. 그리고 중간에 비슷한 덕후 친구들을 만나서 하이큐도 잠시 보기도 했고, 웹툰도 한참 보기도 했다. 정말 뭐 오타쿠가 거쳐오는 뻔한 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런 영상 매체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찾아듣기도 하면서 외국 락에 빠져들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빅 히어로6을 봤다가 폴 아웃 보이의 Immortals를 듣고 빠져들었고, 눈 떠보니 패닉 앳 더 디스코나 마이 케미컬 로맨스도 좋아하고 있었다. Emo 장르 자체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원래도 노래 들을 때 가사는 안듣는 편이고, 일단 그 패션도 별로 안 좋아해서...) 어쩌다보니 그 대표주자 셋은 엄청나게 좋아했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제라드 웨이만 놓고 봐도 중2 중3 쯤 된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저 얼굴을 하고, 저렇게 스타일링을 하고, 락 밴드를 하는데, 만화도 그린다고? (아직까지도 제라드 웨이가 엄브렐라 아카데미의 원작자인 건 좀 충격적이다.) 락 밴드는 음악이 좋아서 들은 거다보니 누구 하나가 최애에 등극했다!는 아닐지 몰라도 정말 꾸준히 좋아하긴 했다. 난 아직도 가끔 Helena 뮤비에 나오는 겉은 검고 속은 붉은 우산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이 때부터 2차 창작이라는 데에 눈을 떴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고싶어! 하는 마음이 그림과 글로 이어지게 됐고, 그렇게 해서 난 매 수업시간마다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했다. 잘 그리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림 보는 눈도 늘고, 이에 따라 실력도 늘게 되었다.

 


 

3. 황금기: 향유를 넘어서서 1차 창작의 영역으로

 

그리고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 황금기가 도래한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결국 내가 1차 창작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원래 보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자급자족해야 하는 게 덕질러의 삶이다. 이건 2차 창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거다. 좋아하는 장르가 있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더라도 아마 한두 군데씩 아 이건 내 취향 아닌데... 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스토리 상에서의 설정이라든지, 아니면 사소한 머리색이나 의상 같은 거라든지... 그런 부분을 고치고 개선해나가다보면 결국은 아예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질 때가 됐다. 그렇지만 난 그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그러다 그 때 친구 중에 하나가 자캐라는 걸 들고 왔다. 그게 뭐야? 하고 물어보다보니 "우리 같이 ㅇㅇ한 세계관에서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 짜고 놀아요~"라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에서 내가 좋아할만한 캐릭터를 만들고, 그걸 다른 창작자와 함께 '내 캐릭터는 이래~' '네 캐릭터도 멋지다!' '헉! 둘이 만나면 이럴지도?' 하며 설정 놀음을 하는 거라니... 너무 부끄러워보였지만 동시에 너무 재밌어보여서 냉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난 여기에 정말 한없이 빠져들었다. 이건 더 설명하면 부끄러우니 자세한 건 생략하지만... 거의 몇 년 간은 여기에 빠져 살았다. 특히 캐릭터 디자인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내가 내 캐릭터를 만들고, 그리고, 어떤 설정을 붙이고 다른 사람의 캐릭터와 어떤 이야기를 쌓는지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말 좋았다. 자캐 덕질로 업을 삼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리고 이건 지금 내가 걷는 길의 복선이 된다.

아무튼 이 때 만든 캐릭터들은 정말 여실히 내 취향이 묻어난다. 난 내 캐릭터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내가 고급스러운 무드를 가진 캐릭터를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박하고 웃기거나 찌질한 뉘앙스의 캐릭터보다는 진중하고 사연 있는 애들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들이 전자의 캐릭터들과 엮이는 모습도 꽤 즐겼다. 뭔들 일단 입에 넣고 보면 맛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뜨끈한 국밥처럼 계속 찾게 되는 건 그쪽이라고나 할까...?

부끄럽다...

그렇게 사람들과 놀다보니 어느샌가 TRPG에도 발을 들이게 되었고, 캐릭터 간의 관계성이나 그 클리셰들을 여실히 아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오타쿠들은 대비감과 아이러니를 매우 좋아하는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오타쿠이다.) 직접 경험하며 얻은 데이터베이스는 수치화할 수도, 증거를 내밀 수도 없는 모호한 자료이지만 그래도 나름 많은 장르를 거쳐온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난만큼 대체로 잘 들어맞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잡다하게, 야매로나마 UI를 만질 수 있던 것도 결국 이런걸 다 자급자족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의상 디자인도 꽤 좋아했다...만,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도 같다.

 


 

4. 쇠퇴기: 새로운 고찰과 개척, 지금 여기

 

나는 덕질을 내 업으로 삼고 싶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걸 내 삶의 큰 부분으로 만들고,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포인트이다. 그러나 그것과 현실은 꽤나 다르기 마련이다. 내 취향이 마이너하다면 아무리 창작 실력이 좋아도 시장성을 잡을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다. 반대로 내 취향이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다 해도 내 창작 실력이 안 좋으면 레드 오션인 창작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길을 하기엔 난 이미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강했다. 일평생 내 창작에 대한 욕심과 자부심, 그간 쌓아온 데이터베이스와 실력은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고, 재미도 아직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그나마 한 진로에 대한 고민도 그림으로 창작을 할지, 글로 창작을 할지 정도의 고민일 뿐, 창작을 하겠다는 생각은 결코 바뀐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꽤 높았고, 창작의 영역이 엄청난 레드 오션임을 깨달았을 무렵의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지쳐간다는 의미는 콘텐츠를 향유할만한 여유가 점점 없어진다는 말이었다. 예전엔 의미 깊은 영화들, 오픈 엔딩의 매체들을 곱씹어보며 무슨 의미일지 고민하는 걸 즐기던 모습과 다르게 심신의 여유가 없어져 한번 보고 즐거웠다!로 끝나는 매체들을 선호했다. 한 마디로 뇌 빼고 볼 수 있는 것만 봤다.

벽에 부딪히고 나서는 내 적성과 흥미에 대해 분석을 재시작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의 느낌.

2024.02.13 - [[일지] 게임 제작의 발자국] - [개인] 2D 아트 하던 제가 시나리오 기획을 한다구요?!

위 글을 비롯해 여러번 이야기했듯 그 결과 난 게임 시나리오와 내러티브, 게임 시스템으로 풀어내는 스토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게임 스토리텔링의 연출이 너무도 좋았다. 또, 나의 창작욕과 예술에 대한 갈망도 대폭 중화되어 상업성을 따지는 눈이 늘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이것을 좋아하는지 분석하는 것도 꽤 재밌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난 내가 명확히 틀이 정해져 있을 때 그 안에서의 창작을 하는 걸 매우 잘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난 0에서 1을 만드는 것보다는 1에서 10을 만드는 걸 더 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도 웹소설이나 웹툰과 같은 순수 창작의 영역보다는 더더욱 게임 시스템을 활용해 새로운 자극과 몰입을 이끌어내야 하는 게임 스토리텔링 쪽이 잘 맞았다.

그렇게 진로를 잡고 나니 따라잡아야 할 게임 데이터베이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지금은 게임에 힘을 쓰는 중이다. 게임도 정말 재밌다. 영화나 드라마, 자캐 놀이는 쉰지 꽤 되었다.

그렇다고 요즘 내가 덕질을 그만 뒀냐 하면 그건 아니다. 발더스게이트를 좋아하고, 왜 사람들이 그 중에서 아스타리온을 좋아하는지 분석해보고, 각 오리진 캐릭터가 스토리 상에서 맡는 역할이 뭔지 알아가는 게 즐겁다. 블라스퍼머스 같은 게임의 세계관을 탐구하는 것도 재밌다. 그러다 요즘은 던전앤파이터 스토리도 보다보니 아간조의 스토리가 너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긴 것도 꽤나 취향이라 오랜만에 뉴-최애 후보를 만난 느낌이다. 던파 모바일은 가끔 해서 귀검사 70렙 캐가 하나 있는데, PC던파는 안해봤어서 이 참에 한번 새로 시작해볼까... 하는 참이다. 그리고 저번에 게임 제작 동아리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지나가듯이 했는데 거기 있던 사람 10명 넘게 다 고개를 휙 돌려서 "던파 한다고??? 왜??? 하지마!!!"한 게 너무 인상 깊다...ㅋㅋㅋㅋㅋ

아무튼, 지금은 그런 상황이다. 1차 창작자라기엔 이미 있는 세계관에서 노는게 좋은... 1.5차 창작자를 꿈꾼달까?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에서 내 캐릭터가 공식 설정이 된다는 게 얼마나 멋진데!

여전히 고급스러운 캐릭터가 좋고, 세계관이야 안 가리고 다 좋아하긴 하지만, 창작에서의 성향만큼은 그러하다. 내 덕질 부흥기가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덕질보다는 그 분석에 더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재밌다! 이 작업도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하고, 정답이 없는 질문인만큼 나름의 결론을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과정이 좋다.

앞으로의 내 취향도, 내 덕질기도 궁금해지며... 오늘은 여기까지.